시 속에서 말하는 ‘나’는 누구일까요? ― 시인과 화자 이야기
먼저 짧은 시 한 줄을 만들어보지요.
나는 오늘 밤 살인을 저질렀다.
조금 무섭습니다.
그런데 이 시를 쓴 사람을 만나자마자 경찰에 신고해야 할까요?
아닙니다.
시 속에서 “나”라고 말했다고 해서 그 사람이 반드시 시인 자신은 아니기 때문이지요.
이번에는 이렇게 써보겠습니다.
나는 천 년 동안 이 숲에서 살았다.
시인이 정말 천 살일까요?
아마 아닐 겁니다.
그렇다면 시 속에서 계속 말하고 있는 이 ‘나’는 도대체 누구일까요?
오늘은 그 사람을 만나보겠습니다.
시인과 화자는 같은 사람이 아닐 수 있습니다
소설에는 작가가 있고 등장인물이 있습니다.
우리는 소설 속 인물이 “나는 살인을 저질렀다”고 말한다고 해서 작가가 살인자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시에서는 이상하게도 이 구별을 쉽게 잊습니다.
시가 짧고,
감정을 직접 말하는 경우가 많으며,
I, ‘나’라는 표현도 자주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기본 원칙은 같습니다.
poet = 시를 쓴 실제 사람
speaker = 시 속에서 말하고 있는 목소리
우리말로 speaker를 보통 화자(話者)라고 합니다.
화자는 얼굴 없는 등장인물입니다
화자를 이해하는 쉬운 방법이 하나 있습니다.
시 속에 목소리만 있는 등장인물 한 명이 있다고 생각해보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사람의 얼굴을 보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이름도 모를 수 있고,
나이도 모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가 하는 말을 통해 조금씩 짐작할 수 있지요.
무엇을 보고 있는지,
누구에게 말하는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무엇을 원하는지.
시를 읽는다는 것은 때때로 이 보이지 않는 사람의 목소리를 듣는 일이기도 합니다.
“I”가 나오면 먼저 한번 멈춰보세요
시에서 이런 문장을 만났다고 해보겠습니다.
I remember you.
우리는 쉽게 이렇게 생각합니다.
“아, 시인이 어떤 사람을 기억하고 있구나.”
그럴 수도 있습니다.
실제 경험에서 나온 시일 수도 있고요.
하지만 아직은 모릅니다.
조금 더 정확한 첫 질문은 이것입니다.
“이 시의 화자가 누군가를 기억하고 있구나.”
별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이 작은 습관이 중요합니다.
이것만으로도 작품과 작가의 실제 삶을 너무 빨리 하나로 합쳐버리는 실수를 줄일 수 있습니다.
로세티의 「Remember」를 다시 볼까요
우리가 읽었던 크리스티나 로세티의 「Remember」에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Remember me when I am gone away,
Gone far away into the silent land;
나를 기억해달라고 말합니다.
자신이 떠난 뒤에도.
아주 멀리, 침묵의 땅으로 간 뒤에도.
이것을 읽고 곧바로,
“로세티가 실제 연인에게 죽은 뒤 자신을 기억해달라고 부탁했구나.”
라고 말해도 될까요?
조금 조심해야 합니다.
그렇게 읽을 가능성은 있지만, 시 속의 말만으로 실제 로세티가 특정한 사람에게 실제로 했던 말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이 시의 화자가 자신이 떠난 뒤 남겨질 사람에게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작가의 인생은 필요 없을까요?
그것도 아닙니다.
작가가 어느 시대에 살았는지,
어떤 경험을 했는지,
어떤 사회에서 작품을 썼는지 아는 것은 시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순서입니다.
먼저 작품 안의 목소리를 듣습니다.
그다음 필요할 때 작가의 삶을 살펴봅니다.
그러면 전기적 사실이 작품을 풍부하게 해석하도록 도와줍니다.
반대로 처음부터,
“이 시는 작가에게 실제로 일어난 사건이다.”
라고 정해버리면 시가 가지고 있던 여러 가능성을 우리가 먼저 닫아버릴 수도 있습니다.
화자는 누구에게 말하고 있을까요?
화자를 찾았다면 다음 질문이 재미있어집니다.
이 사람은 지금 누구에게 말하고 있을까요?
연인?
친구?
죽은 사람?
신?
자기 자신?
혹은 우리 독자?
이렇게 시 속에서 말을 듣는 상대를 addressee, 즉 말을 건네는 대상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상대가 달라지면 같은 문장도 느낌이 달라집니다.
“나를 잊지 마.”
연인에게 하는 말과,
어머니에게 하는 말과,
죽기 직전 자기 아이에게 하는 말은 전혀 다르게 들립니다.
그래서 시를 읽을 때 누가 말하는가만큼 누구에게 말하는가도 중요합니다.
그런데 화자는 믿을 만한 사람일까요?
여기서 시 읽기가 더 재미있어집니다.
화자가 말한다고 해서 그것이 모두 객관적인 사실일까요?
반드시 그렇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읽었던 「Annabel Lee」를 떠올려보지요.
화자는 자신과 애너벨 리의 사랑이 너무 아름다워서 천사들이 질투했고, 그 때문에 그녀가 죽었다고 말합니다.
정말 그랬을까요?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오히려 그 말은 애너벨 리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화자의 슬픔을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화자의 말을 들으면서 동시에 질문할 수 있습니다.
“이 사람이 왜 이렇게 말하고 있을까?”
이 순간부터 시의 화자는 단순한 안내자가 아니라 하나의 인물이 됩니다.
시인은 가면을 쓸 수도 있습니다
시인이 자신과 전혀 다른 사람의 목소리로 시를 쓸 수도 있습니다.
남성이 여성 화자를 만들 수도 있고,
젊은 사람이 노인의 목소리로 말할 수도 있고,
살아 있는 사람이 죽은 사람의 목소리를 빌릴 수도 있습니다.
심지어 사람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나무가 말하고,
강이 말하고,
도시가 말하고,
죽음 자체가 말을 걸 수도 있습니다.
시인은 잠시 다른 존재의 가면을 쓰고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지요.
그래서 화자를 이해하면 시를 읽는 세계가 갑자기 넓어집니다.
아주 작은 탐정 놀이
다음에 시를 읽을 때 화자의 신분증을 만들어보세요.
이름을 알아낼 필요는 없습니다.
네 가지만 찾아봅니다.
누가 말하는가?
누구에게 말하는가?
어떤 상황에서 말하는가?
그 사람의 말을 모두 믿어도 되는가?
시 속에 답이 전부 나오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오히려 나오지 않는 부분을 발견하는 것도 중요한 읽기입니다.
오늘 배운 것은 두 가지면 충분합니다
poet — 시인
실제로 작품을 쓴 사람.
speaker — 화자
시 속에서 우리에게 말을 건네는 목소리.
그리고 한 가지를 더 기억해두면 좋겠습니다.
시인과 화자가 같을 수도 있지만, 같다고 자동으로 가정해서는 안 됩니다.
오늘부터 시에서 이것 하나만 물어보세요
다음 시에서 I, me, my, 나, 내가, 나의를 발견하면 잠깐 멈춰보세요.
그리고,
“이 ‘나’는 누구지?”
라고 물어보는 겁니다.
시인의 전기부터 검색하기 전에 작품 안에서 단서를 찾아봅니다.
무엇을 보고 있는지.
누구에게 말하는지.
무엇을 숨기고 있는지.
그리고 왜 하필 지금 이 말을 하는지.
그러면 어느 순간 시를 읽는 일이 조금 이상하게 변합니다.
우리는 더 이상 종이 위의 문장만 읽고 있지 않습니다.
그 문장 뒤에서 말하고 있는 한 사람의 목소리를 듣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목소리는,
시인과 아주 가까울 수도 있고,
전혀 다른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다음 마지막 5부에서는 지금까지 배운 모든 것이 만나는 가장 재미있는 질문으로 갑니다.
시에는 정답이 있을까요?
― 해석, 모호함, 그리고 ‘내 마음대로 읽기’의 차이
여기서는 “시에는 정답이 없다”라는 유명한 말이 정말 맞는지 한번 제대로 따져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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