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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bert Louis Stevenson — 아무 일정 없이, 어디론가 걷고 싶은 날, 「방랑자」

  집을 나서면서 어디까지 갈지 정하지 않는 날이 있습니다. 늘 걷던 길을 따라가다가 평소에는 지나쳤던 골목으로 들어가기도 하고, 조금 더 걷고 싶으면 다음 모퉁이까지 가 보기도 합니다. 꼭 보아야 할 것도, 정해진 시간에 도착해야 할 곳도 없습니다. 그렇게 걷다 보면 처음에는 머릿속을 따라오던 일들이 조금씩 멀어지기도 하지요. 해야 할 일은 여전히 남아 있지만, 잠깐은 발밑의 길과 나뭇잎 흔들리는 소리에 마음이 머뭅니다. 여러분도 무언가를 해결해서가 아니라, 그저 한동안 걸었기 때문에 마음이 가벼워진 적 있으신가요. 오늘 읽을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방랑자」에는 길 위에서 살아가기를 바라는 사람이 나옵니다. 우리가 잠시 산책을 나서는 것보다 훨씬 멀리 나아가는 목소리입니다. 별이 보이는 덤불을 잠자리로 삼고, 강물에 적신 빵을 먹으며, 머리 위의 하늘과 앞에 놓인 길을 원합니다. 그 삶을 그대로 따라갈 수는 없더라도, 왜 이 사람이 그토록 길을 원하는지 잠시 함께 걸으며 들어보고 싶습니다. 내게는 하늘과 길을 All I seek, the heaven above And the road below me. 내가 바라는 것은 머리 위의 하늘, 그리고 발밑의 길뿐. 두 행을 읽으면 풍경이 단순해집니다. 위에는 하늘이 있고, 아래에는 길이 있습니다. 그 사이에 한 사람이 서 있습니다. 무엇을 더 가져야 할지 생각하던 마음으로 읽으면 조금 뜻밖입니다. 이 사람은 자신이 바라는 것을 자꾸 줄여 갑니다. 끝에 남는 것은 길을 걸을 수 있는 자리와 그 위로 펼쳐진 하늘입니다. 문득 이런 생각도 듭니다. 우리가 가끔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고 말할 때, 꼭 새로운 장소만을 바라는 것은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잠시라도 자신의 속도로 움직이고 싶은 마음이 그 말에 함께 들어 있지는 않을까요. 원문 만나기 The Vagabond (To an air of Schubert) Robert Louis Stevenson (1850–1894) 🔊 Read Poetry Give to m...

Emily Brontë의 「사랑과 우정」— 설렘이 지나간 뒤에도 곁에 남는 사람

 오랜만에 연락했는데도 어제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처럼 편안한 사람이 있습니다. 한동안 소식을 전하지 못한 까닭을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되고, 특별히 재미있는 이야기를 준비할 필요도 없습니다. “잘 지냈어?”라는 말 뒤로 조금씩 일상이 이어집니다. 여러분에게도 그런 사람이 있으신가요. 자주 만나지는 못해도, 문득 생각나면 마음 한쪽이 따뜻해지는 사람 말입니다. 처음 가까워지던 순간은 선명하게 기억하면서도, 오래 곁에 있어 준 시간은 무심히 지나칠 때가 있습니다. 반가운 연락에 마음이 들뜨던 날과 달리, 늘 비슷하게 건네오는 안부는 익숙해지기 때문일까요. 그러다 조금 힘든 시기를 보내고 나서야 그 평범한 말이 얼마나 고마웠는지 돌아보게 되기도 합니다. 오늘 읽을 에밀리 브론테의 「사랑과 우정」에는 두 식물이 나옵니다. 꽃을 피우는 들장미와 짙은 잎을 지닌 호랑가시나무입니다. 시는 두 식물을 나란히 바라보다가 계절을 천천히 바꾸어 놓습니다. 꽃이 아름다운 때를 지나 겨울이 왔을 때, 우리의 눈길은 어디에 머물게 될까요. 꽃이 필 때에는 잘 보이지 않던 것 Love is like the wild rose-brier; Friendship like the holly-tree. 사랑은 들장미 같고, 우정은 호랑가시나무 같다. 첫 두 행은 간결합니다. 사랑과 우정이라는 넓은 말을 두 식물의 모습으로 바꾸어 놓습니다. 들장미를 떠올리면 꽃의 빛깔과 향기가 먼저 생각납니다. 호랑가시나무에서는 단단하고 윤기 나는 잎이 떠오릅니다. 시에서도 들장미가 피어 있을 때 호랑가시나무는 어둡게 보입니다. 꽃에 눈이 머물러 있는 동안에는 그 짙은 잎빛이 별다르게 느껴지지 않을 수도 있겠습니다. 우리 곁의 관계에도 그런 순간이 있지 않을까요. 마음을 설레게 하는 사람의 말은 오래 되새기면서, 늘 곁에서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의 안부는 짧게 받아넘기는 날이 있습니다. 브론테는 여기서 서둘러 결론을 내리지 않습니다. 먼저 한 가지를 묻습니다. 어느 쪽이 더 한결같이 피어 있을까 하고요. 지...

Matthew Arnold — 「묻힌 삶」(The Buried Life), 내 마음의 소리가 들리는 순간

 하루 동안 많은 말을 나누고도, 정작 하고 싶었던 말은 꺼내지 못한 채 저녁을 맞을 때가 있습니다. 안부를 묻고, 해야 할 일을 이야기하고, 가벼운 농담에 웃기도 했는데 마음 한쪽에는 무언가 남아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감춘 말일 수도 있지만, 아직 나 자신도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한 마음일 수도 있겠지요. 그럴 때 오래 알고 지낸 사람이 조용히 이야기를 들어주면, 말을 하다가 문득 알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내가 그동안 무엇 때문에 서운했는지, 무엇을 그리워했는지, 어떤 일을 하고 싶었는지 말입니다. 상대에게 내 마음을 설명하다가 오히려 내가 나를 조금 더 이해하게 되는 순간이라고 할까요. 오늘은 매슈 아널드의 「묻힌 삶」을 읽어봅니다. 일상 아래로 숨어 버린 마음과, 그 마음이 잠시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을 따라가는 시입니다. 내 안에서도 잘 들리지 않는 목소리 “And what we mean, we say, and what we would, we know.” “우리는 마음에 품은 것을 말하고, 무엇을 원하는지 알게 됩니다.” 평범해 보이는 말인데, 가만히 읽으면 조금 멈추게 됩니다. 마음에 있는 것을 그대로 말하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아는 일이 생각만큼 쉽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아널드의 시는 가까운 사람과 가벼운 말을 주고받는 장면에서 시작합니다. 웃고 있지만 화자의 눈에는 눈물이 고입니다. 농담으로 닿을 수 없는 곳에 슬픔이 남아 있습니다. 그는 상대에게 손을 내밀어 달라고, 잠시 조용히 있어 달라고 청합니다. 사랑하는 사이에도 마음을 온전히 전하기는 어렵습니다. 이 시가 들여다보는 거리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만 있지 않습니다. 살아가는 나와, 그 삶 속에서 잘 알아보지 못했던 나 사이에도 놓여 있습니다. 원문 만나기 The Buried Life Matthew Arnold (1822–1888) 🔊 Read Poetry ※ 긴 작품이므로 중간과 후반의 세 대목을 발췌했습니다. 아래의 ‘중략’은 원문의 일부를 생략했다는 표시입니다. But o...

Thomas Hardy — 「무채색」(Neutral Tones)

  아직 10월 초순인데도 날이 갑자기 많이 추워졌습니다. 창밖의 하늘은 맑고 푸릅니다. 이렇게 가을이 깊어갈수록 마음 한켠에 꼭꼭 숨어 있던 먼 과거의 한때가 문득 떠오릅니다. 한동안 잊고 지냈던 사람이나, 이제는 갈 일이 없는 장소가 생각나기도 합니다. 그때 나누었던 대화는 흐릿한데, 이상하게 주변 풍경만 또렷할 때가 있습니다. 무슨 말을 먼저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아도, 그날의 빛이나 발밑에 떨어져 있던 잎은 떠오릅니다. 여러분에게도 어떤 계절이 돌아오면 함께 생각나는 장면이 있으실까요. 오늘 읽을 토머스 하디의 「무채색」에도 그런 장소가 있습니다. 겨울날의 연못가입니다. 두 사람이 서 있고, 햇빛은 창백하며, 땅에는 잿빛 나뭇잎 몇 장이 떨어져 있습니다. 큰 소리로 다투는 장면은 없습니다. 그러나 몇 마디 말과 잠깐의 표정만으로도, 두 사람 사이에서 무엇인가 끝나가고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이 시는 1867년에 쓰였고, 1898년 시집 『웨식스 시집과 다른 시들』에 실렸습니다. 열여섯 행의 짧은 시 안에서, 한겨울의 풍경은 시간이 지나도 지워지지 않는 기억이 됩니다. 말보다 오래 남은 눈길 Your eyes on me were as eyes that rove Over tedious riddles of years ago; 나를 향한 당신의 눈길은 오래전의 지겨운 수수께끼를 더듬는 눈길 같았다.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이 있는데, 그 눈길에서 더는 반가움을 느낄 수 없습니다. 상대에게 나는 이미 여러 번 들여다보았지만 풀리지 않았고, 이제는 풀고 싶은 마음마저 줄어든 수수께끼가 된 듯합니다. 가까운 사이에서 마음이 멀어지는 것을 느낄 때에도, 뚜렷한 말보다 눈길이 먼저 달라지곤 하지 않을까요. 여전히 마주 보고 있지만 예전처럼 서로에게 닿지 않는 순간입니다. 하디는 그 변화를 길게 설명하지 않고, 오래된 수수께끼를 바라보는 눈에 담아놓습니다. 원문 만나기 Neutral Tones Thomas Hardy (1840–1928) 🔊 Read Poetry ...

Alfred, Lord Tennyson — 「부서져라, 부서져라, 부서져라」(Break, Break, Break)

 오래 만나지 못한 사람을 떠올릴 때, 얼굴보다 목소리가 먼저 생각나는 날이 있습니다. 이름을 부르던 말투나 별것 아닌 이야기를 하며 웃던 소리 같은 것들입니다. 사진에는 남지 않는 그 소리가 문득 그리워질 때가 있지 않으신가요. 오늘 읽을 테니슨의 시에는 여러 소리가 들립니다. 바위에 부딪히는 파도, 함께 노는 아이들의 외침, 배 위에서 부르는 젊은 뱃사람의 노래입니다. 그런데 그 소리들 사이에서 시인이 듣고 싶어 하는 목소리 하나는 들려오지 않습니다. 「부서져라, 부서져라, 부서져라」는 그렇게 바다의 소리와 한 사람의 침묵을 나란히 놓습니다. 열여섯 행의 짧은 시이지만, 다 읽은 뒤에도 파도 소리가 조금 오래 남습니다. 다시 잡고 싶은 손, 다시 듣고 싶은 목소리 But O for the touch of a vanish’d hand, And the sound of a voice that is still! 아, 그러나 사라진 손의 감촉이 그립구나, 이제는 잠잠해진 그 목소리가! 누군가를 그리워한다는 말은 넓고도 막연합니다. 그런데 손의 감촉과 목소리를 떠올리는 순간, 그리움에는 한 사람의 모습이 생깁니다. 함께했던 모든 일을 되돌려달라는 말보다, 그 손을 한 번만 더 잡고 싶다는 말이 오히려 더 가까이 다가오지 않을까요. 테니슨은 젊은 시절 가까운 친구 아서 헐럼을 잃었습니다. 이 시도 그 상실과 연결해 읽혀 왔습니다. 하지만 시 안에는 친구의 이름도, 두 사람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도 나오지 않습니다. 사라진 손과 멎은 목소리만 남아 있습니다. 그 빈자리에 독자도 자신이 그리워하는 사람을 조용히 떠올릴 수 있겠습니다. 원문 만나기 Break, Break, Break Alfred, Lord Tennyson (1809–1892) 🔊 Read Poetry Break, break, break, On thy cold gray stones, O Sea! And I would that my tongue could utter The thoughts th...

John Clare — 아무도 내 마음을 모르는 것 같은 날, 「나는 존재한다」(I Am!)

 누군가와 한참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왔는데도, 정작 하고 싶었던 말은 꺼내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말했지만, 그 일을 겪는 동안 마음이 어땠는지는 설명하기 어려웠던 것이겠지요. 가까운 사람에게도 잘 전해지지 않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느껴보신 적 있으실까요. 오늘 읽을 존 클레어의 「나는 존재한다」는 그런 외로움보다 훨씬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시입니다. 누구도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다는 탄식으로 시작해, 마지막에는 풀과 하늘 사이에서 조용히 잠들고 싶다는 바람에 닿습니다. 곧바로 위로의 말을 찾기보다, 이 사람이 어떤 마음으로 그곳까지 갔는지 천천히 따라가 보려 합니다. 나는 여기 있는데 I am! yet what I am none cares or knows, 나는 존재한다! 그러나 내가 어떤 존재인지 아무도 마음 쓰지 않고 알지도 못한다. ‘나는 존재한다’는 말만 떼어놓으면 단단한 선언처럼 들립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에 아무도 자신을 알지 못한다는 말이 이어집니다. 내가 여기 있다는 사실은 분명한데, 그 사실이 다른 사람에게는 닿지 않는 듯합니다. 우리는 이름이나 직업, 누군가와의 관계를 통해 자신을 소개하곤 합니다. 하지만 그런 말들을 다 하고도 아직 설명하지 못한 내가 남아 있지 않을까요. 이 시의 첫 문장은 그 틈을 아프게 드러냅니다. 클레어는 영국의 농촌에서 자라 자연의 작은 움직임을 세심하게 시에 담았던 사람입니다. 그의 삶에는 가난과 정신적 고통이 있었고, 오랜 세월 정신요양시설에서 지냈습니다. 그 배경을 알고 읽으면 첫 문장의 외로움이 더 가까이 다가옵니다. 다만 한 사람의 시를 병력으로만 설명하지 않고, 그가 남긴 말 자체에도 귀를 기울이고 싶습니다. 원문 만나기 I Am! John Clare (1793–1864) 🔊 Read Poetry I am! yet what I am none cares or knows, My friends forsake me like a memory lost; I am the s...

Emily Brontë — 낙엽이 지는 계절을 반기는 마음, Fall, Leaves, Fall

  가을로 들어서면 꽃이 진 자리보다 나뭇잎에 먼저 눈이 갑니다. 아직 푸른 잎 사이에서 빛깔이 달라진 잎을 찾아보기도 하고, 길 위에 떨어진 잎 하나에 잠시 걸음을 늦추기도 합니다. 무언가가 지고 있다는 사실이 꼭 쓸쓸하게만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계절이 바뀌는 모습을 조금 더 바라보고 싶어집니다. 오늘은 낙엽이 떨어지고 밤이 길어지는 것을 기꺼이 맞이하는 시를 읽어봅니다. 『폭풍의 언덕』의 작가로 익숙한 에밀리 브론테의 「떨어져라, 낙엽이여」입니다. 여덟 행밖에 되지 않는 짧은 시인데, 가을을 바라보는 눈길이 사뭇 다릅니다. 꽃이 시들어도 좋고, 낮이 짧아져도 좋다고 합니다. 이 사람에게는 어떤 계절이 다가오고 있는 걸까요. 낙엽 한 장이 건네는 기쁨 Every leaf speaks bliss to me, Fluttering from the autumn tree. 가을 나무에서 팔랑이며 내려오는 잎 하나하나가 내게 더없는 기쁨을 말해준다. 낙엽이 말을 건넨다는 표현 앞에서 잠시 멈추게 됩니다. 나무를 떠난 잎이 땅에 닿기까지, 그 짧은 움직임을 바라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잎은 팔랑이고, 그 모습에서 기쁨을 듣습니다. ‘bliss’는 깊고 충만한 행복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떨어지는 잎을 보며 이토록 큰 기쁨을 느낀다고 하니 조금 뜻밖입니다. 하지만 누군가는 꽃이 피는 날보다 바람이 서늘해지는 날에 마음이 편안해지기도 합니다. 이 시를 읽을 때에는 그런 마음을 먼저 떠올려도 좋겠습니다. 원문 만나기 Fall, Leaves, Fall Emily Brontë (1818–1848) 🔊 Read Poetry Fall, leaves, fall; die, flowers, away; Lengthen night and shorten day; Every leaf speaks bliss to me, Fluttering from the autumn tree. I shall smile when wreaths of snow Blossom where the rose sho...

Siegfried Sassoon — 노래가 터져 나오던 순간, 「모두가 노래했다」(Everyone Sang)

  여럿이 부르는 노래를 듣다가 문득 목이 메는 때가 있습니다. 가사가 특별히 슬픈 것도 아닌데, 함께 이어지는 목소리 때문에 마음 한구석이 움직입니다. 혼자 들을 때는 그냥 지나갔던 노래가 그날은 조금 다르게 들립니다. 오늘 읽을 시에도 그런 순간이 찾아옵니다. 사람들이 갑자기 노래하기 시작하고, 그 소리를 듣는 사람의 마음에 기쁨이 차오릅니다. 그런데 그 기쁨 곁에는 눈물도 있습니다. 지그프리드 서순의 「모두가 노래했다」는 열 행의 짧은 시입니다. 짧은 노래가 끝난 뒤에도 귀를 조금 더 기울이게 됩니다. 문득, 모두가 노래하기 시작했습니다 Everyone suddenly burst out singing; 모두가 갑자기 노래를 터뜨렸다. 시인은 누가 먼저 노래했는지, 무슨 노래였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저 노래가 터져 나왔다고 합니다. 오래 참았던 웃음이나 울음처럼, 목소리가 저절로 흘러나온 듯합니다. 이 첫 문장에는 준비할 시간이 없습니다. 읽는 우리도 어느새 노래가 시작된 자리에 서게 됩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사람들의 목소리는 새장에 갇혀 있다가 풀려난 새들의 날갯짓으로 바뀝니다. 서순은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고, 전쟁의 참혹함을 시에 남긴 영국 시인입니다. 이 작품에는 1919년 4월이라는 날짜가 붙어 있습니다. 전쟁이 끝난 뒤의 시라는 사실을 알고 읽으면, 기쁨 사이로 스치는 공포라는 말이 조금 무겁게 들립니다. 그렇다고 시 속 장면을 특정한 종전 축하 행사로 정해둘 필요는 없겠습니다. 시는 장소도, 노래하는 사람들의 이름도 말하지 않습니다. 원문 만나기 Everyone Sang Siegfried Sassoon (1886–1967) 🔊 Read Poetry Everyone suddenly burst out singing; And I was filled with such delight As prisoned birds must find in freedom Winging wildly across the white Orchards and da...

John Masefield — 다시 바다로 가고 싶은 날, 「바다를 향한 열망」(Sea-Fever)

 바다를 보고 돌아왔는데도 한동안 파도 소리가 귀에 남을 때가 있습니다. 일상으로 돌아와 하던 일을 하다가도, 문득 그 넓은 수평선이 떠오릅니다. 바다에서 특별히 무엇을 하지 않았어도 그렇습니다. 그곳에 두고 온 시간이 조금은 다른 속도로 흘렀던 것 같습니다. 오늘은 다시 바다로 가고 싶다는 마음을 담은 시를 읽어봅니다. 존 메이스필드의 「바다를 향한 열망」입니다. 바람과 돛, 물보라가 가득한 시인데, 끝에 이르면 뜻밖에도 조용한 잠과 꿈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떠나고 싶은 마음은 어디쯤에서 쉬고 싶은 마음과 만나는 걸까요. 배 한 척과 별 하나 And all I ask is a tall ship and a star to steer her by, 내가 바라는 것은 돛대 높은 배 한 척, 그리고 길잡이가 되어줄 별 하나, 바다로 나가려는 사람이 바라는 것치고는 참 단출합니다. 배 한 척과 별 하나라니요. 하지만 넓은 바다 한가운데 있다고 생각하면, 이 두 가지가 조금 다르게 다가옵니다. 몸을 실을 곳이 있고, 어디로 가야 할지 가늠할 빛이 있습니다. 많은 것을 갖추지 않아도 길을 떠날 수 있을 듯합니다. 메이스필드는 젊은 시절 실제로 배를 타고 항해했던 시인입니다. 1902년 시집 『Salt-Water Ballads』에 실린 이 작품에도 바다를 멀리서 바라보기만 해서는 알기 어려운 감각이 담겨 있습니다. 파도에 밀려 손으로 전해지는 키의 움직임, 흔들리는 돛, 얼굴에 날아드는 물보라가 차례로 찾아옵니다. 제목의 ‘fever’는 열병을 뜻합니다. 여기서는 바다를 향한 마음이 몸의 열기처럼 가라앉지 않는다고 느껴집니다. 「바다를 향한 열망」이라는 우리말 제목에는 그 간절함을 담았습니다. 원문 만나기 John Masefield (1878–1967) Sea-Fever 🔊 Read Poetry I must go down to the seas again, to the lonely sea and the sky, And all I ask is a tall ship an...

Thomas Hardy — 「그 후에」(Afterwards), 작은 것들을 눈여겨보던 사람

누군가를 떠올릴 때, 그 사람이 자주 하던 말보다 사소한 몸짓 하나가 먼저 생각나기도 합니다. 길가에 핀 꽃을 보려고 걸음을 늦추던 모습, 멀리서 새소리가 들리면 잠깐 이야기를 멈추던 모습 같은 것들입니다. 함께 있을 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시간이 흐르고 나면 그런 장면이 오래 남습니다. 오늘은 토머스 하디의 「그 후에」를 읽어보려 합니다. 제목만 보면 무슨 일이 지나간 뒤의 이야기인지 궁금해집니다. 시인이 바라보는 것은 자신이 세상을 떠난 뒤입니다. 조금 쓸쓸한 이야기일 것 같지만, 시 안으로 들어가면 푸른 잎이 흔들리고, 새가 내려앉고, 작은 고슴도치가 잔디밭을 건너갑니다. 떠나고 난 뒤를 생각하는 동안, 지금 살아 있는 것들이 오히려 가까이 다가옵니다. 그는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었던 걸까요. “He was a man who used to notice such things” “그는 이런 것들을 눈여겨보던 사람이었지.” 여기서 ‘이런 것들’은 오월의 나뭇잎입니다. 막 자아낸 비단처럼 얇고 섬세한 잎이 바람에 날개처럼 움직이는 모습이지요. 누구나 볼 수 있는 풍경이지만, 누구나 그 앞에서 걸음을 늦추는 것은 아닐 겁니다. 하디는 이웃들이 그런 잎을 보다가 자신을 잠깐 떠올려주기를 바라는 듯합니다. 『테스』의 소설가로 익숙한 하디는 시도 오래 썼습니다. 「그 후에」는 1917년에 나온 시집 『환영의 순간들』(Moments of Vision)의 마지막에 실렸습니다. 자신의 부재를 생각하는 시의 끝자리에 어떤 말이 남는지, 서두르지 않고 읽어보면 좋겠습니다. 원문 — Afterwards Thomas Hardy (1840–1928) 🔊 Read Poetry When the Present has latched its postern behind my tremulous stay, And the May month flaps its glad green leaves like wings, Delicate-filmed as new-spun silk, will the...

John Keats, 여름의 노래가 겨울에도 이어질 때 — 「메뚜기와 귀뚜라미에게」

계절이 바뀔 때면 들리는 소리도 조금씩 달라집니다. 한동안 익숙했던 소리가 잦아들고, 그 자리에 다른 작은 소리가 들어옵니다. 여름이 지나가는 일은 아쉬워도, 저녁 풀숲에서 들려오는 울음에는 또 그 나름의 정겨움이 있습니다. 오늘은 메뚜기와 귀뚜라미가 등장하는 키츠의 짧은 시를 읽어보려 합니다. 여름 한낮에서 겨울 저녁으로 건너가는 동안, 시인은 두 작은 생명의 소리에 귀를 기울입니다. 새들마저 더위에 지쳐 쉬는 시간에도, 서리가 내려 사방이 고요해진 시간에도 어디선가 노래는 이어지고 있습니다. 시의 첫 문장은 “대지의 시는 결코 죽지 않는다”입니다. 조금 큰 말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 말을 들려주는 목소리는 아주 작습니다. 풀밭의 메뚜기 한 마리, 난롯가의 귀뚜라미 한 마리면 충분합니다. 메뚜기와 귀뚜라미에게 On the Grasshopper and Cricket John Keats (1795–1821) 🔊 Read Poetry The poetry of earth is never dead: When all the birds are faint with the hot sun, And hide in cooling trees, a voice will run From hedge to hedge about the new-mown mead; That is the Grasshopper's—he takes the lead In summer luxury,—he has never done With his delights; for when tired out with fun He rests at ease beneath some pleasant weed. The poetry of earth is ceasing never: On a lone winter evening, when the frost Has wrought a silence, from the stove there shrills The Cricket's song, in warmth increas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