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조금 더 재미있어지는 5가지 방법 ①
먼저 아주 짧은 실험 하나를 해볼까요.
다음 문장을 읽어보세요.
나는 오늘도 당신을 기다렸지만 당신은 오지 않았다.
별로 어려울 것이 없습니다.
이번에는 똑같은 말을 이렇게 써보겠습니다.
나는 오늘도
당신을 기다렸지만
당신은
오지 않았다.
단어는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느낌은 조금 달라지지요.
두 번째 문장에서는 자꾸 멈추게 됩니다.
특히,
당신은
다음에 잠깐 멈춘 뒤,
오지 않았다.
를 읽으면 마지막 말이 조금 더 무겁게 느껴집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요?
시인이 새로운 단어를 넣은 것도 아닙니다.
문장의 뜻을 바꾼 것도 아니고요.
그저 Enter 키를 몇 번 눌렀을 뿐입니다.
그런데 그것만으로 문장이 달라졌습니다.
오늘 이야기는 바로 여기서 시작합니다.
소설이나 에세이를 읽을 때는 보통 종이의 오른쪽 끝에 도달하면 다음 줄로 내려갑니다.
그 줄바꿈 자체에는 특별한 의미가 없는 경우가 많지요.
책의 크기가 달라지면 줄이 끝나는 위치도 달라집니다.
하지만 시는 조금 다릅니다.
시인은 대개 어디에서 한 줄을 끝낼지 스스로 결정합니다.
이렇게 시에서 만들어진 한 줄을 영어로 line, 우리말로 **행(行)**이라고 합니다.
예를 들어,
나는 오늘도
당신을
이라고 썼다면 두 개의 행입니다.
어려운 말처럼 보이지만 사실 간단합니다.
시의 한 줄 = 한 행(line).
이것만 기억하면 됩니다.
이번에는 이것을 보겠습니다.
나는 오늘도
당신을
당신은
중간에 빈 공간이 하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앞의 두 줄과 뒤의 두 줄을 따로 느끼게 됩니다.
시에서 이렇게 여러 행이 하나의 덩어리를 이루는 것을 연(stanza)이라고 합니다.
산문에 문단(paragraph)이 있다면 시에는 연이 있다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두 가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line = 행 = 시의 한 줄
stanza = 연 = 여러 행이 모인 한 덩어리
벌써 시를 이야기할 때 자주 등장하는 두 단어를 알게 되었네요.
그런데 중요한 것은 용어가 아닙니다.
이제부터 조금 더 재미있는 일이 시작됩니다.
다음 두 문장을 비교해볼까요.
첫 번째.
나는 당신을 사랑했지만
이제 떠나야 한다.
두 번째.
나는 당신을 사랑했지만 이제
떠나야 한다.
뜻은 거의 같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를 읽으면 ‘이제’ 뒤에서 무언가가 걸립니다.
나는 당신을 사랑했지만 이제—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아주 잠깐의 시간이 생깁니다.
그리고 다음 행에서 대답이 나옵니다.
떠나야 한다.
시인은 이렇게 줄의 끝을 이용해서 독자의 기다림을 만들 수 있습니다.
한 줄이 끝났다는 것은 단순히 종이의 공간이 부족해졌다는 뜻이 아닙니다.
때로는 아주 작은 침묵을 만드는 일이기도 합니다.
여기에서 시를 읽을 때 아주 자주 만나는 현상이 하나 있습니다.
문법적으로 문장은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시의 행은 끝나는 경우입니다.
예를 들어,
나는 창문을 열고
아무도 없는 길을 바라보았다.
첫 행만 읽으면 문장이 끝나지 않았습니다.
“나는 창문을 열고…”
그래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다음 행으로 넘어갑니다.
이렇게 문장이 끝나기 전에 행이 먼저 끝나는 것을 영어로 enjambment라고 합니다.
우리말로는 보통 행걸침이라고 하지요.
이름은 조금 어렵습니다.
하지만 현상 자체는 전혀 어렵지 않습니다.
문장은 계속 가는데,
그것이 enjambment입니다.
산문이라면 그냥 이렇게 쓰면 됩니다.
나는 창문을 열고 아무도 없는 길을 바라보았다.
아주 자연스럽습니다.
그런데 시인이
나는 창문을 열고
아무도 없는 길을 바라보았다.
라고 쓰면 독자는 아주 짧은 순간,
창문을 열고
에서 멈춥니다.
그 순간에는 아직 무엇이 보이는지 모릅니다.
다음 행으로 내려가야 비로소 알게 되지요.
아무도 없는 길.
시인은 줄 하나를 끊어서 독자가 정보를 받는 순서와 속도까지 조절한 셈입니다.
이것이 시에서 행갈이가 중요한 이유입니다.
우리가 읽었던 에밀리 디킨슨의 시를 떠올려보겠습니다.
“Hope” is the thing with feathers —
That perches in the soul —
산문처럼 한 줄로 붙이면 대략 이렇게 됩니다.
“Hope” is the thing with feathers that perches in the soul.
뜻은 전달됩니다.
희망은 영혼에 내려앉는 깃털 달린 존재라는 것이지요.
그런데 디킨슨은 그렇게 쓰지 않았습니다.
먼저,
“Hope” is the thing with feathers —
에서 멈춥니다.
희망은 깃털 달린 존재다.
그러면 독자는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됩니다.
무엇일까?
새인가?
그리고 다음 행이 옵니다.
That perches in the soul —
그것은 영혼에 내려앉습니다.
줄이 바뀌면서 이미지가 한 단계씩 만들어집니다.
희망.
깃털.
그리고 영혼에 내려앉는 존재.
시인은 단어만 선택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독자가 그 단어를 언제 만나게 할지도 선택합니다.
여기서 한 가지 조심할 것이 있습니다.
시에서 줄이 끝났다고 해서 반드시 문장도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처음 시를 읽을 때 꽤 중요한 부분입니다.
우리는 눈으로 줄이 끝나면 무의식적으로 목소리도 멈추려 합니다.
하지만 문장이 계속되고 있다면 너무 크게 멈출 필요는 없습니다.
예를 들어,
나는 아침마다 길을 걸으며
어제 하지 못했던 말을 생각한다.
첫 행 끝의 ‘걸으며’에서 문장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낭독한다면 아주 짧게 숨만 두고 다음 행으로 자연스럽게 이어가는 편이 좋습니
다.
반대로 마침표가 있다면 문장이 실제로 끝난 것입니다.
그러니까 시를 읽을 때는 두 가지를 함께 보면 좋습니다.
줄은 어디에서 끝나는가?
그리고
문장은 어디에서 끝나는가?
이 둘이 항상 같은 곳에 있지는 않습니다.
바로 그 차이에서 시의 리듬이 생기기도 합니다.
시에서 중요한 것은 글자가 있는 곳만이 아닙니다.
아무것도 없는 곳도 중요합니다.
한 연이 끝나고 다음 연이 시작되기 전의 빈 공간을 생각해볼까요.
그 공간에는 글자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 독자는 잠시 멈춥니다.
시간이 지나기도 하고,
장면이 바뀌기도 하고,
생각의 방향이 달라지기도 합니다.
음악에서 쉼표가 소리가 없다고 해서 의미가 없는 것이 아닌 것처럼,
시에서도 빈 공간은 때때로 침묵이라는 표현이 됩니다.
그래서 시는 종이 위에서 어떻게 보이는지도 중요합니다.
여기서 재미있는 질문이 생깁니다.
아무 문장이나 여러 줄로 나누면 시가 되는 걸까요?
예를 들어,
오늘
점심으로
김치찌개를
먹었다.
줄을 네 개로 나눴습니다.
그러면 갑자기 훌륭한 시가 되었을까요?
아마 그것만으로는 부족하겠지요.
행갈이는 마법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왜 거기에서 끊었는가입니다.
그 줄바꿈 때문에 단어가 더 눈에 들어오는지,
잠깐의 긴장이 생기는지,
두 가지 의미가 만들어지는지,
호흡이나 리듬이 달라지는지.
그런 이유가 있을 때 행갈이는 시의 일부가 됩니다.
직접 한번 해볼까요.
문장은 이것입니다.
나는 당신이 떠난 뒤에야 그 방이 얼마나 조용한지 알았다.
어디에서 줄을 끊겠습니까?
예를 들어 이렇게 할 수도 있습니다.
나는 당신이 떠난 뒤에야
그 방이 얼마나 조용한지 알았다.
이번에는 이렇게 해보지요.
나는 당신이
떠난 뒤에야
그 방이 얼마나
조용한지 알았다.
또 이렇게도 가능합니다.
나는 당신이 떠난 뒤에야 그 방이
얼마나 조용한지 알았다.
어느 것이 가장 좋은지는 문맥에 따라 달라집니다.
하지만 하나는 분명합니다.
같은 단어인데도 줄을 어디에서 끊느냐에 따라 독자가 머무는 곳이 달라집니다.
첫 번째에서는 ‘떠난 뒤’가,
두 번째에서는 ‘당신’과 ‘조용한’이,
세 번째에서는 마지막까지 이어지는 긴 호흡이 조금 더 눈에 들어옵니다.
이제 시인이 왜 행 하나를 결정하는 데 오래 고민할 수 있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겠지요.
복잡하게 외울 필요는 없습니다.
행(line)
연(stanza)
행걸침(enjambment)
그런데 사실 이 세 단어보다 더 중요한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다음에 시를 읽을 때,
“왜 시인은 하필 여기에서 줄을 바꾸었을까?”
한 번만 생각해보는 것입니다.
답을 반드시 찾아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 질문을 하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이전에는 그냥 지나쳤던 시의 모습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합니다.
오늘부터 시에서 이것 하나만 보세요
다음에 시 한 편을 펼치면 뜻부터 이해하려고 서두르지 않아도 됩니다.
먼저 시의 모양을 한번 바라보세요.
어디에서 줄이 끝나는지.
어디에 빈 공간이 있는지.
문장이 끝나는 곳과 행이 끝나는 곳이 같은지.
그리고 마음에 걸리는 줄 하나가 있다면 잠깐 물어보는 겁니다.
왜 여기였을까?
시를 재미있게 읽는 첫 번째 방법은 어쩌면 아주 단순합니다.
무엇을 썼는지만 읽지 않고,
다음 2부에서는 이제 눈이 아니라 귀를 사용해보겠습니다.
「시에는 정말 음악이 숨어 있을까? ― 리듬, 운율, 라임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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