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답이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아무리 크게 불러도 그 사람이 다시 돌아올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지요.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중에 헤어진 이름이여!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심중에 남아 있는 말 한마디는
끝끝내 마저 하지 못하였구나.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붉은 해는 서산마루에 걸리었다.
사슴의 무리도 슬피 운다.
떨어져 나가 앉은 산 위에서
나는 그대의 이름을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부르는 소리는 비껴가지만
하늘과 땅 사이가 너무 넓구나.
선 채로 이 자리에 돌이 되어도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이름은 있는데 그 사람은 없습니다
첫 연은 거의 한 번에 터져 나오는 울음처럼 들립니다.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사람이 부서졌다고 하지 않습니다.
이름이 부서졌습니다.
그다음에는 그 이름마저 허공으로 흩어집니다.
“허공중에 헤어진 이름이여!”
그리고 세 번째 행에 이르면 더 이상 그 이름에 대답할 사람이 없습니다.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여!”
여기까지 읽으면 어떤 느낌이 드시나요?
시인은 계속 이름을 부르고 있는데, 우리가 듣게 되는 것은 오히려 대답 없는 침묵인 것 같지 않으신가요?
그래서 이 시에서 가장 먼저 다가오는 것은 죽음 그 자체보다도 어쩌면 부르는 목소리와 침묵 사이의 거리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행에서 그 부름은 더 절박해집니다.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그 이름을 부르는 일이 자신의 생명보다 오래 이어질 것처럼 들립니다.
하지 못한 말 한마디
두 번째 연에서는 조금 다른 슬픔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심중에 남아 있는 말 한마디는
끝끝내 마저 하지 못하였구나.”
무슨 말이었을까요?
소월은 알려주지 않습니다.
사랑한다는 말이었을 수도 있고, 미안하다는 말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조금만 더 함께 있어 달라는 말이었을지도 모르지요.
그런데 정말 중요한 것은 그 말이 무엇이었느냐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끝내 하지 못했다는 것.
그 사실이 더 오래 남습니다.
여러분에게도 뒤늦게 떠오르는 말 한마디가 있으신가요?
그때 왜 그 말을 하지 못했을까.
한마디만 더 했더라면 어땠을까.
우리는 살아가면서 했던 말을 후회하기도 하지만, 시간이 훨씬 지난 뒤까지 마음에 남는 것은 오히려 하지 못했던 말일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에서는 이제 그 말을 전할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니 화자가 할 수 있는 것은 다시 그 사람을 부르는 것뿐입니다.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한 번으로는 부족했던 모양입니다.
다시 부릅니다.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이 반복을 읽다 보면 같은 문장인데도 두 번째 부름이 첫 번째보다 조금 더 멀리 퍼져나가는 것처럼 들리지 않으시나요?
해가 지고 있습니다
세 번째 연에서 처음으로 넓은 풍경이 나타납니다.
붉은 해가 서산마루에 걸려 있습니다.
사슴의 무리도 슬피 웁니다.
그리고 화자는 사람들 사이가 아니라,
“떨어져 나가 앉은 산 위에서”
홀로 그 이름을 부릅니다.
왜 하필 해 질 무렵이었을까요?
낮이 끝나고 어둠이 찾아오는 시간이라서였을까요. 아니면 한 사람의 삶이 끝난 순간과 저물어가는 해가 자연스럽게 겹쳐 보였던 것일까요.
정답을 하나로 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다만 첫 연에서 마음속에서 터져 나왔던 목소리가 이제 산과 들이 펼쳐진 넓은 공간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은 느낄 수 있습니다.
화자는 이름을 부릅니다.
그 목소리가 산을 넘어갈 것처럼 말이지요.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대답은 돌아오지 않습니다.
하늘과 땅 사이가 너무 넓습니다
네 번째 연에서는 그 부름이 더욱 절실해집니다.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또 반복입니다.
그런데 곧이어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부르는 소리는 비껴가지만
하늘과 땅 사이가 너무 넓구나.”
이 대목에서는 잠시 멈추게 되지 않으시나요?
죽음이라는 것이 갑자기 하나의 거대한 거리처럼 느껴집니다.
한 사람은 이쪽에 있습니다.
다른 사람은 더 이상 이쪽에 없습니다.
목소리는 그 사이를 건너가려고 하지만 어디론가 비껴갑니다.
그리고 화자는 그 이유를 아주 단순하게 말합니다.
하늘과 땅 사이가 너무 넓다고.
아무리 크게 이름을 불러도 건널 수 없는 거리가 있다는 것.
어쩌면 이별이 가장 아픈 순간도 바로 이런 때인지 모르겠습니다. 하고 싶은 말은 아직 남아 있는데 그 말을 들을 사람이 더 이상 같은 곳에 없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말이지요.
돌이 되어도 부르겠습니다
마지막 연에서 화자는 움직이지 않습니다.
“선 채로 이 자리에 돌이 되어도”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다 끝내 돌이 되었다는 오래된 망부석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떠오릅니다.
그런데 「초혼」의 화자는 그저 기다리기만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계속 부릅니다.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여기서 어디선가 본 문장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으셨나요?
그렇습니다.
첫 연의 마지막 행이 다시 돌아왔습니다.
시가 한 바퀴를 돌아 처음의 절규로 되돌아온 것이지요.
그동안 무엇이 달라졌을까요?
사실 현실에서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떠난 사람은 돌아오지 않았고, 하지 못한 말도 전해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는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다시,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시가 끝납니다.
왜 이름을 계속 부를까요?
여기까지 읽고 나면 처음에 던졌던 질문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대답이 없다는 것을 아는데 왜 계속 부르는 걸까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어쩌면 이름을 부르는 동안에는 그 사람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은 떠났지만 이름은 남습니다.
누군가 그 이름을 기억하고 부르는 동안에는 그 사람과 함께했던 시간도 잠시 우리 곁으로 돌아옵니다.
그래서 「초혼」에서는 이름을 부르는 일이 어느 순간 기억하는 일이 되고, 기억하는 일이 다시 사랑하는 일이 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이름을 모릅니다
시를 다 읽고 나면 한 가지 이상한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화자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그렇게 애타게 이름을 부르는데, 정작 시에는 그 이름이 한 번도 나오지 않습니다.
생각해보면 참 묘하지요.
그토록 중요한 이름인데 소월은 왜 우리에게 알려주지 않았을까요?
대신 반복해서 들려주는 말은 이것뿐입니다.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어쩌면 이름이 없기 때문에 이 시는 한 사람의 사연에서 멈추지 않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비어 있는 자리에 우리도 각자의 이름 하나를 놓아볼 수 있으니까요.
여러분의 마음에도 그런 이름 하나가 있으신가요?
이미 떠난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사람일 수도 있고요.
아주 오래전 기억 속에서만 만날 수 있는 사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꼭 죽음으로 헤어진 사람이 아니어도 괜찮겠지요. 한때 아주 가까웠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멀어진 사람의 이름도 있을 테니까요.
부르는 사람의 마음은 남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이름을 부르고 또 많은 이름을 잊습니다.
그런데 어떤 이름은 시간이 아주 오래 지나도 사라지지 않습니다.
평소에는 잊고 지내다가도 노래 한 곡을 듣거나, 오래된 길을 걷거나, 문득 저녁 하늘을 바라보다가 그 이름이 다시 떠오르기도 하지요.
그럴 때가 있지 않으신가요?
김소월의 「초혼」은 바로 그런 이름을 다시 한번 불러보게 하는 시처럼 느껴집니다.
대답을 듣기 위해서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그 사람이 한때 내 곁에 있었다는 것을 잊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그 사람을 사랑했던 자신의 마음까지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말이지요.
그래서 마지막의 부름은 처음과 같은 문장인데도 조금 다르게 들립니다.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대답은 여전히 없습니다.
하늘과 땅 사이의 거리도 좁아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부르는 목소리는 남아 있습니다.
어쩌면 「초혼」이 오랜 시간이 지나도 우리 마음을 건드리는 까닭은 여기에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시 속의 이름은 비어 있지만,
그 빈자리를 바라보는 순간 우리 마음속에서는 누군가의 이름 하나가 조용히 떠오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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