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이 바뀔 때면 들리는 소리도 조금씩 달라집니다. 한동안 익숙했던 소리가 잦아들고, 그 자리에 다른 작은 소리가 들어옵니다. 여름이 지나가는 일은 아쉬워도, 저녁 풀숲에서 들려오는 울음에는 또 그 나름의 정겨움이 있습니다.
오늘은 메뚜기와 귀뚜라미가 등장하는 키츠의 짧은 시를 읽어보려 합니다. 여름 한낮에서 겨울 저녁으로 건너가는 동안, 시인은 두 작은 생명의 소리에 귀를 기울입니다. 새들마저 더위에 지쳐 쉬는 시간에도, 서리가 내려 사방이 고요해진 시간에도 어디선가 노래는 이어지고 있습니다.
시의 첫 문장은 “대지의 시는 결코 죽지 않는다”입니다. 조금 큰 말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 말을 들려주는 목소리는 아주 작습니다. 풀밭의 메뚜기 한 마리, 난롯가의 귀뚜라미 한 마리면 충분합니다.
메뚜기와 귀뚜라미에게
On the Grasshopper and Cricket
John Keats (1795–1821)
The poetry of earth is never dead:
When all the birds are faint with the hot sun,
And hide in cooling trees, a voice will run
From hedge to hedge about the new-mown mead;
That is the Grasshopper's—he takes the lead
In summer luxury,—he has never done
With his delights; for when tired out with fun
He rests at ease beneath some pleasant weed.
The poetry of earth is ceasing never:
On a lone winter evening, when the frost
Has wrought a silence, from the stove there shrills
The Cricket's song, in warmth increasing ever,
And seems to one in drowsiness half lost,
The Grasshopper's among some grassy hills.
※ mead는 여기서 ‘초원’을 뜻하는 옛 시어입니다. wrought는 work의 옛 과거분사로, 이 시에서는 서리가 고요를 ‘만들어 놓았다’는 뜻으로 쓰였습니다.
우리말로 읽기
대지의 시는 결코 죽지 않는다.
새들이 모두 뜨거운 햇볕에 지쳐
서늘한 나무 사이로 숨을 때, 한 목소리가 달린다.
갓 풀을 벤 초원 둘레, 산울타리에서 산울타리로.
그것은 메뚜기의 소리—여름의 풍요를
앞장서 누리는 메뚜기는 즐거움을
그칠 줄 모른다. 실컷 즐기다 지치면
풀 한 포기 아래 편안히 쉬어 간다.
대지의 시는 한순간도 그치지 않는다.
쓸쓸한 겨울 저녁, 서리가
사방을 고요하게 해 놓으면 난롯가에서 낭랑히 울린다.
온기 속에서 더욱 높아지는 귀뚜라미의 노래가.
졸음에 반쯤 잠긴 이에게 그 소리는
풀 우거진 언덕 사이 메뚜기의 노래처럼 들린다.
새들이 쉬는 동안
시 속의 여름은 새들이 힘차게 노래하는 아침이 아닙니다. 햇볕이 뜨거워 새들마저 나무 그늘로 몸을 숨긴 한낮입니다. 자연의 노래가 잠시 멎을 법한 시간이지요. 그 빈자리를 메뚜기의 소리가 채웁니다.
키츠는 그 소리가 산울타리에서 산울타리로 ‘달린다’고 씁니다. 풀을 베어 낸 초원 둘레로 울음이 번져 가는 모습이 눈앞에 그려집니다. 메뚜기가 어디 있는지 보이지 않아도, 소리를 따라가다 보면 한낮의 풀밭이 조금씩 살아 움직이는 듯합니다.
메뚜기가 누리는 ‘여름의 풍요’도 눈길을 붙잡습니다. 이 작은 생명에게는 햇볕과 풀, 마음껏 울 수 있는 시간이 넉넉히 주어져 있습니다. 그러다 지치면 풀 한 포기 아래에서 쉽니다. 우리가 무심히 잡초라고 부를 만한 풀도, 메뚜기에게는 몸을 눕히기 좋은 그늘이 됩니다.
쉬어 가는 모습까지 이토록 편안하게 바라본다는 것이 좋습니다. 메뚜기는 계속 노래해야 한다는 재촉을 받지 않습니다. 실컷 즐기고, 지치면 쉬는 일도 여름의 한 부분입니다.
겨울 저녁에 들려오는 소리
아홉 번째 행에 이르면 계절이 바뀝니다. 뜨거운 초원은 사라지고, 서리가 내려 고요해진 겨울 저녁이 찾아옵니다. 바깥으로 넓게 퍼지던 여름의 소리 대신, 이제는 난롯가 가까이에서 귀뚜라미가 웁니다.
우리에게 귀뚜라미는 가을밤의 소리로 익숙해서 겨울이라는 배경이 조금 낯설 수 있습니다. 여기서는 시가 보여주는 따뜻한 난롯가를 떠올려 보면 좋겠습니다. 바깥에는 서리가 내려 있고, 안에서는 온기와 함께 작은 울음이 살아납니다.
처음의 “대지의 시는 결코 죽지 않는다”는 말은 이곳에서 “대지의 시는 한순간도 그치지 않는다”로 돌아옵니다. 같은 뜻에 가까운 두 문장이 여름과 겨울을 나란히 놓습니다. 한 목소리가 쉬는 사이에 다른 목소리가 들려오는 셈입니다.
이 시는 열네 줄로 이루어진 소네트입니다. 앞의 여덟 줄에는 여름의 메뚜기가, 뒤의 여섯 줄에는 겨울의 귀뚜라미가 등장합니다. 짧은 시 안에서 계절과 장소가 바뀌지만, 작은 생명이 내는 소리를 따라가다 보면 그 사이가 멀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졸음 속에서 다시 만나는 여름
마지막 두 행에는 그 소리를 듣는 사람이 나타납니다. 난롯가의 온기에 졸음이 밀려오는 사람입니다. 반쯤 잠에 빠진 귀에 귀뚜라미의 울음이 풀 우거진 언덕의 메뚜기 소리처럼 들립니다.
그 순간 겨울 방 안에 여름의 풀밭이 겹쳐집니다. 시는 날씨를 바꾸지 않고도 우리를 다른 계절로 데려갑니다. 서리가 내린 바깥은 그대로인데, 소리를 듣는 마음속에는 햇볕과 풀이 돌아와 있습니다.
어떤 소리는 이렇게 시간의 거리를 줄여 주기도 합니다. 오래 듣지 못했던 새소리나 빗소리에 잊고 있던 장소가 떠오르는 것처럼요. 키츠는 그 기억을 길게 설명하지 않습니다. 졸음에 잠긴 사람 곁에 잠시 머물렀다가, 풀 우거진 언덕을 보여주며 시를 마칩니다.
여름이 끝나면 여름의 소리도 멀어집니다. 그렇다고 세상이 모두 조용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조금 다른 곳에서, 조금 다른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그 작은 소리를 듣고 있으면 지나간 계절도 아주 멀리 떠나지는 않은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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