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he Yellow Wallpaper」를 읽으며
몸이 아픈데 가까운 사람이 자꾸 괜찮다고 말한다면 어떨까요?
걱정해서 하는 말이라는 것을 압니다. 나를 위해 쉬라고 하고,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쉴수록 마음은 더 답답해지고, 내가 느끼는 것을 설명하려 해도 아무도 진지하게 들어주지 않습니다.
그런 시간이 오래 이어진다면 사람의 마음은 어떻게 될까요?
Charlotte Perkins Gilman의 「The Yellow Wallpaper」는 한 여성이 여름 동안 머물게 된 방에서 시작합니다.
남편 John은 의사입니다.
그는 아내를 사랑하고 걱정합니다. 그래서 쉬어야 한다고 생각하지요.
글을 쓰는 것도 좋지 않다고 합니다.
생각을 많이 하는 것도 좋지 않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녀 자신은 조금 다르게 느낍니다.
그리고 그 말을 마음 놓고 할 수 있는 곳은 아무도 보지 않는 종이 위뿐입니다.
The Yellow Wallpaper
Charlotte Perkins Gilman (1860–1935)
원문 일부
John is practical in the extreme. He has no patience with faith, an intense horror of superstition, and he scoffs openly at any talk of things not to be felt and seen and put down in figures.
John is a physician, and perhaps—(I would not say it to a living soul, of course, but this is dead paper and a great relief to my mind)—perhaps that is one reason I do not get well faster.
You see he does not believe I am sick!
And what can one do?
우리말로 읽어봅니다
John은 지극히 현실적인 사람입니다. 믿음 같은 것에는 조금도 마음을 두지 않고, 미신을 몹시 싫어하며, 눈으로 보거나 손으로 만질 수도 없고 숫자로 나타낼 수도 없는 이야기는 대놓고 비웃습니다.
John은 의사입니다. 그리고 어쩌면―살아 있는 사람에게는 절대로 이런 말을 하지 못하겠지만, 이 종이는 말이 없으니 마음이 조금 놓입니다―내가 좀처럼 낫지 않는 데에는 그것도 한 이유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는 내가 아프다는 것을 믿지 않거든요.
그러니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그는 내가 아프다는 것을 믿지 않습니다”
이 문장을 읽으면 잠시 멈추게 됩니다.
You see he does not believe I am sick!
그녀에게 가장 힘든 것은 병 자체만이 아닌 것 같습니다.
자신이 느끼고 있는 것을 가장 가까운 사람이 믿어주지 않는다는 사실이 함께 있습니다.
John이 악의를 가진 사람으로만 그려지는 것도 아닙니다.
그는 아내를 쉬게 합니다.
약을 챙기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알려줍니다.
어쩌면 자기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지요.
그래서 오히려 더 답답합니다.
사랑하는 것과 상대의 말을 듣는 것은 언제나 같은 일이 아닐 수도 있으니까요.
아무것도 하지 말고 쉬세요
여자는 일을 하지 않습니다.
글도 쓰지 못합니다.
남편은 생각을 많이 하는 것조차 건강에 좋지 않다고 여깁니다.
겉으로 보면 꽤 편안한 생활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큰 집에서 여름을 보내고, 집안일을 하는 사람도 있으며, 하루 종일 쉬기만 하면 됩니다.
그런데 사람에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언제나 휴식이 될까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있는데 하지 못하고,
마음을 표현하고 싶은데 말하지 못하며,
내 몸과 마음에 대해 다른 사람이 더 잘 안다고 계속 말한다면,
고요함은 어느 순간 휴식이 아니라 갇힘처럼 느껴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녀는 몰래 글을 씁니다
이 작품은 일기처럼 이어집니다.
남편에게 들키지 않도록 몰래 쓰는 글이지요.
그녀는 종이 앞에서만 자신이 생각하는 것을 말할 수 있습니다.
그 점이 참 중요하게 느껴집니다.
누군가에게 말할 수 없었던 생각을 혼자 종이에 적어본 경험이 있으신가요?
말로 꺼내면 괜히 일이 커질 것 같고,
설명해도 이해받지 못할 것 같고,
그래서 혼자 마음속에 넣어두었던 것들 말입니다.
그녀에게 글쓰기는 그런 작은 틈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틈마저 오래 허락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벽지가 눈에 들어옵니다
그녀가 머무는 방에는 노란 벽지가 붙어 있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마음에 들지 않는 벽지입니다.
색도 이상하고 무늬도 불쾌합니다.
그런데 할 일이 거의 없는 방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다 보니, 그녀는 점점 그 무늬를 바라보게 됩니다.
처음에는 보기 싫었습니다.
그러다 궁금해집니다.
무늬가 어떻게 이어지는지 바라보고,
어디에서 끊기는지 살펴보고,
빛이 달라지면 어떻게 보이는지도 관찰합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벽지 뒤에 무언가가 있는 것처럼 느끼기 시작합니다.
여기서부터 이야기는 조금씩 불편해집니다.
벽지 뒤의 여인
화자는 벽지 무늬 뒤에 한 여자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여자는 밖으로 나오려고 합니다.
무늬가 마치 창살처럼 그녀를 가로막고 있다고 느끼지요.
처음에는 이상한 상상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조금 오래 들여다보면 질문이 생깁니다.
왜 하필 벽지 뒤에 갇힌 여자가 보였을까요?
방 밖으로 자유롭게 나갈 수 없고,
자기 생각을 마음대로 말할 수 없으며,
글을 쓰는 것조차 숨겨야 하는 사람의 눈에는 벽지의 무늬가 다르게 보였던 것은 아닐까요.
물론 작품이 그 답을 단순하게 설명해주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독자는 조금 불안한 마음으로 그녀의 시선을 따라가게 됩니다.
“나를 위해서”라는 말
이 작품을 읽으며 자꾸 생각하게 되는 말이 있습니다.
“당신을 위해서.”
우리는 가까운 사람에게 이 말을 자주 합니다.
건강을 위해서.
미래를 위해서.
당신이 잘되기를 바라서.
대부분은 정말 좋은 마음에서 하는 말일 것입니다.
하지만 상대가 무엇을 원하는지 듣지 않은 채 계속 “너를 위해서”라고 말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돌봄이 어느 순간 통제가 될 수도 있고,
보호가 답답한 벽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The Yellow Wallpaper」의 방은 단순한 방으로만 보이지 않습니다.
작가가 실제로 겪었던 일
이 작품은 1892년 The New England Magazine에 발표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작품의 배경을 알고 나면 이야기가 조금 더 가까이 다가옵니다.
Gilman 자신도 심한 신경 쇠약을 겪은 뒤 당시 유명한 의사에게 이른바 ‘rest cure’, 휴식 치료를 받았습니다. 일을 줄이고 지적 활동을 제한하며 글을 쓰지 말라는 처방이었지요. Gilman은 훗날 그 치료가 오히려 자신의 상태를 심각하게 악화시켰다고 회고했습니다.
그렇다고 소설 속 화자를 곧바로 Gilman 자신이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작가의 경험은 작품 뒤에 조용히 놓아두는 편이 좋겠습니다.
그 사실을 알고 다시 소설로 돌아오면, 한 여성이 몰래 종이를 꺼내 글을 쓰는 모습이 조금 다르게 보이는 정도면 충분합니다.
벽지는 정말 무엇이었을까요?
이 작품에서 벽지를 하나의 뜻으로만 설명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감옥처럼 볼 수도 있고,
말하지 못한 마음처럼 볼 수도 있으며,
점점 무너져가는 화자의 정신을 보여주는 것으로 읽을 수도 있겠지요.
아마 그 모든 것이 조금씩 겹쳐 있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처음부터 벽지가 이상했던 것이 아니라는 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처음에는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자신이 아프다고 말하는 사람.
자신에게 일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사람.
글을 쓰고 싶어 하는 사람.
그런데 그 목소리가 계속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우리는 사람보다 벽지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누군가의 말을 믿어준다는 것
「The Yellow Wallpaper」를 다 읽고 나면 무서운 장면보다 조금 다른 생각이 남습니다.
사람의 말을 들어준다는 것은 생각보다 큰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상대가 하는 말을 모두 옳다고 받아들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나는 지금 힘들어요.”
라고 말하는 사람에게
“아니야, 당신은 괜찮아.”
라고 너무 빨리 대답하지 않는 것.
그 사람이 보고 있는 것을 잠시 함께 바라봐주는 것.
어쩌면 어떤 사람에게는 그것이 방의 문을 조금 열어주는 일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이 작품의 노란 벽지는 오래전에 만들어진 낡은 벽지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지금 읽어도 완전히 낯설지는 않습니다.
우리도 때때로 누군가를 위한다는 마음으로 그 사람의 목소리를 먼저 덮어버릴 때가 있으니까요.
그래서 책을 덮고 나면 이런 질문이 남습니다.
나는 가까운 사람이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을 때, 얼마나 오래 들어주고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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