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길을 오르다 보면 저 굽이만 돌면 조금 평평해지겠지 싶은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돌아서면 또 오르막입니다. 잠시 서서 숨을 고르고, 먼저 내려오는 사람에게 묻게 됩니다. 아직 많이 남았나요.
오늘 읽을 시에도 그런 물음이 나옵니다. 길은 끝까지 오르막인지, 하루를 꼬박 걸어야 하는지. 대답을 들으면 마음이 놓일 것 같지만, 막상 듣고 나면 또 다른 걱정이 떠오릅니다. 해가 지면 쉴 곳은 있을까요. 너무 늦게 도착해 문밖에 남게 되지는 않을까요.
크리스티나 로세티의 「오르막길」은 묻는 목소리와 답하는 목소리가 번갈아 이어지는 짧은 시입니다. 누가 묻고 누가 대답하는지는 분명히 밝히지 않습니다. 그래서인지 그 대화에 우리 마음이 들어갈 자리도 남아 있습니다.
Does the road wind up-hill all the way?
Yes, to the very end.
이 길은 내내 굽이굽이 오르막인가요?
네, 맨 끝까지 그렇답니다.
조금만 더 가면 쉬워진다고 말해주지는 않습니다. 다만 다음 대답의 끝에 짧은 부름이 붙습니다. ‘my friend’, 벗이여. 길에 관한 설명을 듣다가 문득 사람의 목소리를 듣게 되는 듯합니다.
Up-Hill
Christina Rossetti (1830–1894)
Does the road wind up-hill all the way?
Yes, to the very end.
Will the day's journey take the whole long day?
From morn to night, my friend.
But is there for the night a resting-place?
A roof for when the slow dark hours begin.
May not the darkness hide it from my face?
You cannot miss that inn.
Shall I meet other wayfarers at night?
Those who have gone before.
Then must I knock, or call when just in sight?
They will not keep you standing at that door.
Shall I find comfort, travel-sore and weak?
Of labour you shall find the sum.
Will there be beds for me and all who seek?
Yea, beds for all who come.
※ ‘morn’은 morning의 시어이고, ‘Yea’는 ‘그렇다’라는 뜻의 옛 표현입니다.
우리말로 다시 읽기 — 오르막길
이 길은 내내 굽이굽이 오르막인가요?
네, 맨 끝까지 그렇답니다.
하루의 여정은 긴 하루를 모두 채워야 하나요?
아침부터 밤까지랍니다, 벗이여.
그래도 밤에는 쉴 곳이 있나요?
어둠의 긴 시간이 시작되면 머물 지붕이 있지요.
어둠 때문에 그곳을 못 보고 지나치지는 않을까요?
그 여관은 놓치지 않을 거예요.
밤이면 다른 길손들도 만나게 되나요?
먼저 그 길을 간 이들을 만나겠지요.
그러면 문을 두드리거나, 보이는 곳에서 불러야 하나요?
그들은 당신을 문밖에 세워두지 않을 거예요.
여행에 지치고 쇠약해진 나도 위안을 얻을까요?
그 모든 수고의 결실을 얻게 될 거예요.
나와 쉴 곳을 찾는 모두에게 잠자리가 있을까요?
그럼요, 찾아오는 모두에게 잠자리가 있답니다.
이 글을 위해 영어 원문에서 새로 옮겼습니다. ‘Of labour you shall find the sum’은 직역하면 ‘수고의 총합을 얻게 된다’에 가까운 구절입니다. 여기서는 앞뒤의 안식과 위안에 관한 문답을 따라 ‘수고의 결실’로 옮겼습니다.
길이 쉽다고 말하지 않는 목소리
첫 대답을 읽으면 조금 야속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끝까지 오르막이고, 아침부터 밤까지 걸어야 한다니요. 힘든 사람에게 건네기에는 너무 숨김없는 말 같습니다.
그런데 계속 읽다 보면 그 솔직함 때문에 뒤의 대답에도 귀를 기울이게 됩니다. 길을 짧게 말해 안심시키려 하지 않았던 목소리가, 밤에는 머물 곳이 있다고 말합니다. 오래 걸어야 한다는 사실과 쉴 곳이 기다린다는 약속이 함께 놓여 있습니다.
살아가면서 듣는 위로도 비슷할 때가 있습니다. 금방 괜찮아질 거라는 말보다, 힘들겠다는 짧은 말에 오히려 마음이 풀리기도 합니다. 내 사정을 다 알지는 못하더라도, 지금 걷는 길이 가파르다는 것만은 알아주는 사람이 있어서일 것입니다.
이 시의 대답에는 재촉이 없습니다. 왜 자꾸 묻느냐고 나무라지도 않습니다. 물음이 이어질 때마다 한 줄씩 답해줍니다. 길손이 다음 걱정을 꺼낼 때까지 기다려주는 것처럼 읽힙니다.
어두워져도 놓치지 않을 집
길손의 걱정은 차츰 구체적이 됩니다. 쉴 곳이 있다는 말을 듣고도 곧바로 안심하지 못합니다. 어둠에 가려 그곳을 못 찾으면 어쩌지. 다른 사람들은 이미 들어갔는데 나만 밖에 남으면 어쩌지.
낯선 곳에 도착하기 전의 마음과 닮았습니다. 주소를 알아도 문 앞에서는 잠시 망설이게 됩니다. 이곳이 맞는지, 나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는지 확인하고 싶어집니다.
그때 돌아오는 말이 유난히 다정합니다. 그들은 당신을 문밖에 세워두지 않을 거라고 합니다. 얼마나 일찍 도착했는지, 얼마나 씩씩하게 걸어왔는지는 묻지 않습니다. 지쳐서 문 앞에 선 사람에게 먼저 들어올 자리를 내어주는 모습이 떠오릅니다.
밤과 여관, 먼저 길을 간 사람들을 따라 읽으면 삶의 끝과 죽음 너머의 안식도 생각하게 됩니다. 시 속 여정을 신앙의 길로 읽을 여지가 여기에 있습니다. 다만 그 큰 의미를 먼저 정해두기보다, ‘문밖에 세워두지 않는다’는 말에 잠시 머물러도 좋겠습니다. 먼 훗날의 안식이 오늘 누군가를 맞아들이는 작은 몸짓으로 가까워집니다.
나뿐 아니라, 찾아오는 모두에게
마지막에 길손은 자기 잠자리만 묻지 않습니다. ‘나와 쉴 곳을 찾는 모두’에게 자리가 있는지 묻습니다. 처음에는 내가 얼마나 더 걸어야 하는지가 걱정이었는데, 어느새 함께 길을 걷는 사람들까지 마음에 들어와 있습니다.
대답은 그보다도 넓습니다. ‘찾아오는 모두’에게 잠자리가 있다고 합니다. 시는 문을 열어주는 장면을 길게 그리지 않고, 이 짧은 말로 끝납니다. 덕분에 우리는 각자 다른 방과 불빛, 다른 얼굴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걱정이 많은 날에는 이 대답을 쉽게 믿기 어려울지도 모릅니다. 읽고 나서도 내일의 일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그래도 ‘당신을 문밖에 세워두지 않을 거예요’라는 문장은 조금 오래 곁에 두고 싶어집니다. 내가 듣고 싶은 말이기도 하고, 언젠가 다른 사람에게 건넬 수 있으면 싶은 말이기도 합니다.
산길에서 잠시 멈추면 조금 전에는 들리지 않던 바람 소리가 들립니다. 물 한 모금을 마시고 내려온 쪽을 바라봅니다. 아직 남은 길을 다 알 수는 없어도, 걸어온 길은 발아래 놓여 있습니다.
로세티의 시를 덮고 나니 높은 정상보다 작은 문 하나가 떠오릅니다. 늦게 도착한 사람도 오래 두드릴 필요가 없는 문입니다.
원문 출처: Academy of American Poets, 「Up-Hill」. 원문은 퍼블릭 도메인 작품입니다. 문구와 구두점은 해당 자료를 따르며, 블로그에서는 질문과 대답 모두 들여쓰기 없이 왼쪽 정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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