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숲을 자세히 바라보면 같은 색의 나뭇잎은 거의 없습니다.
어떤 잎은 아직 초록이고, 어떤 잎은 노랗게 물들었으며, 또 어떤 잎은 가장자리부터 갈색으로 변해갑니다.
하늘도 그렇습니다.
맑은 파란색 하나로만 이루어진 날보다 흰 구름과 잿빛 구름, 그 사이로 비치는 푸른 하늘이 함께 있을 때 오히려 더 아름답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우리는 흔히 아름다움을 이야기할 때 균형과 조화를 떠올립니다.
그런데 Gerard Manley Hopkins는 조금 다른 곳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했습니다.
얼룩진 것.
점박이인 것.
서로 다른 색이 뒤섞인 것.
한 가지 모습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
여러분도 반듯하고 완벽한 것보다 조금 고르지 않은 것에서 오히려 더 오래 눈길이 머문 적이 있으신가요?
Hopkins의 짧은 시 「Pied Beauty」는 바로 그런 것들을 바라봅니다.
Pied Beauty
Gerard Manley Hopkins (1844–1889)
Glory be to God for dappled things—
For skies of couple-colour as a brinded cow;
For rose-moles all in stipple upon trout that swim;
Fresh-firecoal chestnut-falls; finches’ wings;
Landscape plotted and pieced—fold, fallow, and plough;
And áll trádes, their gear and tackle and trim.
All things counter, original, spare, strange;
Whatever is fickle, freckled (who knows how?)
With swift, slow; sweet, sour; adazzle, dim;
He fathers-forth whose beauty is past change:
Praise him.
얼룩진 아름다움
얼룩진 것들로 인해 하느님께 영광을—
얼룩소처럼 두 가지 빛깔로 물든 하늘을,
헤엄치는 송어 몸에 점점이 박힌 장밋빛 반점을,
갓 떨어진 밤송이 속 불붙은 숯 같은 밤알을, 방울새의 날개를,
목장과 묵밭과 쟁기질한 밭으로 나뉘고 이어진 풍경을,
그리고 온갖 일과 그 도구와 장비와 차림새를 위하여.
서로 다르고, 독특하고, 드물고, 낯선 모든 것들,
변덕스럽고 얼룩진 모든 것들―그 까닭을 누가 알겠는가?
빠르고 느린 것, 달고 신 것, 눈부시고 어두운 것.
이 모든 것을 낳으신 이는 스스로 변하지 않는 아름다움을 지니셨으니,
그를 찬양하라.
“dappled things”
첫 행에서 Hopkins는 곧바로 이 시가 바라볼 대상을 말합니다.
“dappled things”
한 가지 색으로 고르게 칠해진 것이 아니라 얼룩지고, 점박이고, 여러 빛깔이 섞여 있는 것들입니다.
그리고 시인은 그것들을 하나씩 불러냅니다.
두 가지 색이 뒤섞인 하늘.
송어의 몸에 박힌 작은 반점.
밤송이 안의 반짝이는 밤알.
새의 날개.
서로 다른 모양으로 나뉜 들판.
그의 눈에는 어느 하나도 똑같지 않습니다.
여기서 재미있는 표현 하나가 눈에 들어옵니다.
“skies of couple-colour as a brinded cow”
하늘을 얼룩소에 비유합니다.
하늘을 묘사하는 시에서 흔히 만나는 낭만적인 비유와는 상당히 다르지요.
그런데 한번 떠올려보면 정말 그렇습니다.
푸른 하늘 사이로 흰 구름과 회색 구름이 흩어져 있는 모습을 멀리서 바라보면 하나의 거대한 얼룩무늬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Hopkins는 사람들이 그냥 지나칠 법한 모습에서 자신만의 아름다움을 발견합니다.
완벽하게 정돈된 자연이 아닙니다
첫 연에는 자연만 등장하지 않습니다.
“fold, fallow, and plough”
가축을 기르는 목장,
쉬고 있는 묵밭,
쟁기로 갈아놓은 밭.
사람의 손길이 닿은 풍경까지 들어옵니다.
그리고 이어서 여러 직업과 그 사람들이 사용하는 도구와 장비까지 바라봅니다.
즉 Hopkins에게 아름다움은 특별한 장소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늘에도 있고,
물고기에도 있고,
들판에도 있고,
사람이 일하는 평범한 생활 속에도 있습니다.
조금 생각해보면 우리 주변에도 이런 것들이 많습니다.
오래 사용해서 색이 조금 바랜 책.
손때 묻은 책상.
반듯하지 않은 오래된 골목.
계절마다 조금씩 색이 달라지는 산.
새것처럼 완벽하지 않아도 이상하게 마음이 가는 것들이 있지 않으신가요?
“counter, original, spare, strange”
두 번째 연에 들어가면 시의 속도가 조금 달라집니다.
Hopkins는 단어들을 연이어 놓습니다.
“counter, original, spare, strange”
서로 다르고,
독특하고,
드물고,
낯선 것들.
그리고 다시 이어집니다.
“swift, slow; sweet, sour; adazzle, dim”
빠른 것과 느린 것.
달콤한 것과 신 것.
눈부신 것과 어두운 것.
서로 반대되는 것들을 한곳에 놓습니다.
하나를 선택하고 다른 하나를 버리지 않습니다.
밝은 것만 아름다운 것도 아니고,
달콤한 것만 좋은 것도 아니며,
빠른 것만 가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서로 다른 것들이 함께 존재하는 세계 자체를 바라봅니다.
이쯤에서 독자에게 조용히 묻고 싶어집니다.
우리도 사람이나 삶을 바라볼 때 너무 쉽게 한 가지 기준으로 나누고 있지는 않을까요?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
이 시에는 흥미로운 대비가 하나 더 있습니다.
시인이 앞에서 찬양한 것들은 모두 변합니다.
하늘의 색도 변하고,
물고기의 무늬도 서로 다르며,
들판은 계절에 따라 달라집니다.
빠른 것은 느려지고,
밝은 것은 어두워집니다.
그런데 마지막에서 Hopkins는 그 모든 변화의 배후에 있는 존재를 바라봅니다.
“He fathers-forth whose beauty is past change”
이 모든 다양한 아름다움을 낳은 존재의 아름다움은 변화를 넘어선다는 것입니다.
Hopkins가 가톨릭 사제였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이 마지막은 자연스럽습니다.
변화무쌍한 세상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다가 그는 그 다양성을 창조한 신에게로 시선을 돌립니다.
그래서 마지막은 단 두 단어입니다.
“Praise him.”
그를 찬양하라.
시가 갑자기 멈추는 듯한 결말입니다.
서로 다르기 때문에
「Pied Beauty」는 아주 짧습니다.
그런데 이 시를 읽고 나면 주변의 사물을 조금 다르게 바라보게 됩니다.
우리는 흔히 아름다움을 완벽함과 연결합니다.
반듯해야 하고,
균형이 맞아야 하고,
흠이 없어야 아름답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Hopkins는 정반대의 곳을 바라봅니다.
얼룩.
반점.
서로 다른 색.
빠름과 느림.
달콤함과 신맛.
밝음과 어둠.
그 어느 것도 지워버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차이들이 있기 때문에 세계가 풍성해진다고 바라봅니다.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도 비슷하지 않을까요?
사람마다 속도가 다르고,
좋아하는 것이 다르고,
살아온 모습도 다릅니다.
그리고 한 사람 안에서도 밝은 부분과 어두운 부분이 함께 존재합니다.
모두 한 가지 색으로 같아져야 아름다운 것은 아닐 것입니다.
오늘 길을 걷다가 얼룩진 나뭇잎 하나를 발견한다면 잠시 바라보아도 좋겠습니다.
완벽하지 않아서 아름다운 것.
서로 다르기 때문에 더 눈길이 가는 것.
Hopkins가 발견한 “pied beauty”는 어쩌면 우리 주변에 이미 가득한지도 모르겠습니다.
여러분 주변에는 어떤 ‘얼룩진 아름다움’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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