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로 들어서자마자 겨울 이야기가 나오게 되네요. 오늘은 아주 사소한 일에서 잠시나마 위로를 얻는 순간을 담은 시를 읽어봅니다. 그런 순간을 놓치지 않는 시인의 세심한 눈길과 함께, 짧은 시가 남기는 긴 여운을 따라가 봅니다.
별일 없이도 마음이 무거운 날이 있습니다. 아침에 들은 말이 자꾸 떠오르거나, 하려던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아 하루가 벌써 지나가 버린 것처럼 느껴지는 날입니다. 밖으로 나와 걸어도 생각은 같은 자리를 맴돕니다.
그러다가 아주 사소한 일에 걸음을 멈추기도 합니다. 바람에 잎 하나가 날아와 옷에 붙거나, 나뭇가지에서 물방울이 떨어지는 일 같은 것 말입니다. 고개를 들어 주위를 봅니다. 방금까지 생각하던 일은 그대로인데, 잠깐 다른 곳을 보고 나니 마음이 조금 달라져 있습니다.
로버트 프로스트의 「눈가루」에는 까마귀 한 마리와 나무 한 그루, 그리고 가지에서 떨어지는 눈이 나옵니다. 겨우 여덟 줄의 시입니다. 그 짧은 순간을 따라 읽다 보면, 하루를 돌아보는 마음에도 작은 틈이 생깁니다.
Dust of Snow
Robert Frost (1874–1963)
The way a crow
Shook down on me
The dust of snow
From a hemlock tree
Has given my heart
A change of mood
And saved some part
Of a day I had rued.
※ hemlock tree는 솔송나무류의 침엽수를 가리킵니다. 같은 영어 이름으로 불리는 독초와는 다릅니다.
우리말로 읽기 — 눈가루
까마귀 한 마리가
솔송나무에서
내 위로 눈가루를
털어 내린 일이
내 마음의
기분을 바꾸어 놓고,
후회하던 하루의
얼마쯤을 건져 주었다.
이 글을 위해 영어 원문에서 새로 옮겼습니다. 우리말의 흐름에 맞게 첫 연의 어순을 조정했습니다.
고개를 들게 한 작은 일
시 속의 사람은 왜 그날을 후회하고 있었을까요. 프로스트는 그 사연을 들려주지 않습니다. 누구와 다투었는지, 어떤 기회를 놓쳤는지, 아니면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시간을 보냈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 빈자리에 읽는 사람의 하루가 조용히 들어갑니다. 말하고 나서 마음에 걸렸던 한마디가 떠오를 수도 있고, 별다른 이유 없이 가라앉아 있던 오후가 생각날 수도 있습니다. 자세한 사연이 없어서 오히려 낯설지 않습니다.
그때 나무에서 눈이 떨어집니다. 까마귀가 가지를 흔들어 그 아래 있던 사람에게 눈가루를 털어 내린 것입니다. 눈을 맞은 사람이 놀라 고개를 들었을까, 어깨를 털었을까 상상해 봅니다. 그런 동작이 시에 적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읽는 동안 그 짧은 장면이 눈앞에 그려집니다.
까마귀는 이 사람의 사정을 모릅니다. 그저 나무 위에서 움직였을 뿐이겠지요. 그런데 그 움직임이 누군가에게는 오래 붙들고 있던 생각에서 잠시 벗어나는 계기가 됩니다. 아무도 위로하려 하지 않았는데, 마음이 조금 가벼워지는 순간이 생긴 것입니다.
눈가루라는 말
제목의 ‘dust’는 먼지나 아주 고운 가루를 뜻합니다. ‘눈가루’라고 옮겨 놓고 보면 커다란 눈송이가 쏟아지는 풍경과는 느낌이 다릅니다. 가지에 얹혀 있던 눈이 잘게 흩어져 내려오는 모습이 떠오릅니다.
손으로 털면 금세 없어지고, 옷에 닿아도 이내 녹아 버릴 만큼 작은 것. 그런데 시 속에서는 그것이 마음에 남습니다. 눈의 양은 얼마 되지 않아도, 그 일을 겪은 사람에게는 하루를 달리 기억할 이유가 됩니다.
숲길을 걷다가 갑자기 들려오는 새소리에도 그런 힘이 있을 때가 있습니다. 생각에 잠겨 걷는 동안 보이지 않던 나무가 그제야 보이고, 발밑의 길도 다시 눈에 들어옵니다. 무엇을 생각하고 있었는지 잠깐 잊은 채 서 있게 되지요. 이 시를 읽으면 그런 짧은 멈춤이 떠오릅니다.
까마귀와 눈 쌓인 나무의 풍경도 오래 바라보게 됩니다. 환한 꽃밭이나 다정한 사람의 얼굴이 없어도 마음은 움직입니다. 겨울나무 아래에서 우연히 맞은 차가운 눈도 때로는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모양입니다.
하루의 얼마쯤을 건져 주었다는 말
이 시에서 가장 오래 머물게 되는 표현은 ‘some part’입니다. 하루의 어느 한 부분, 얼마쯤이라는 말입니다.
눈을 맞고 모든 걱정이 사라졌다는 이야기는 없습니다. 그날을 후회하게 만든 일이 해결되었다는 말도 없습니다. 다만 하루의 얼마쯤이 구해졌다고 합니다. 그 정도의 변화라서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우리는 기분이 좋지 않은 날이면 아직 저녁도 오지 않았는데 하루 전체를 판단해 버리곤 합니다. 오늘은 잘못되었다고, 별로 남은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아침의 마음과 오후의 마음이 꼭 같아야 하는 것은 아니겠지요. 몇 시간이 힘들었다고 해서 남은 시간까지 미리 정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프로스트는 ‘saved’라는 말을 씁니다. 구했다, 건져 주었다는 뜻입니다. 번역하면서 ‘하루의 얼마쯤을 건져 주었다’고 옮긴 것은 그 작은 몫을 남겨 두고 싶어서였습니다. 버렸다고 생각한 하루에도 아직 건져 올릴 시간이 있었다는 느낌입니다.
이 말이 좋습니다. 좋은 하루가 되려면 처음부터 끝까지 좋아야 할 것 같은 마음을 조금 내려놓게 합니다. 하루 가운데 한순간만 달라져도, 저녁에 돌아보는 그날의 모습은 전과 같지 않을 수 있으니까요.
짧은 시를 다시 읽는 동안
원문을 소리 내어 읽으면 짧은 말들이 가볍게 이어집니다. 첫 연의 ‘crow’와 ‘snow’, ‘me’와 ‘tree’가 서로 소리를 주고받습니다. 둘째 연에서도 ‘heart’와 ‘part’, ‘mood’와 ‘rued’가 짝을 이룹니다. 한 줄씩 읽으면 금세 끝나지만, 다시 읽을 때는 그 소리가 귀에 남습니다.
두 연은 문장으로도 이어져 있습니다. 나무에서 눈이 떨어진 일이 첫 연에 놓이고, 그 일이 마음에 남긴 변화가 둘째 연으로 이어집니다. 눈가루가 가지에서 사람에게, 다시 마음속으로 내려오는 것처럼 읽어볼 수도 있겠습니다.
시를 다 읽고 나면 까마귀는 여전히 나무 어딘가에 있을 것 같습니다. 세상에 특별한 일이 일어난 것은 아닙니다. 눈이 조금 떨어졌고, 그 아래 있던 사람의 기분이 달라졌습니다. 우리는 그 사람이 남은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알지 못합니다.
다만 저녁이 되어 그날을 떠올릴 때, 나무 아래의 짧은 순간도 함께 기억했을 것 같습니다. 후회만 남을 줄 알았던 하루에 까마귀 한 마리와 흩날리는 눈가루가 들어와 있는 것입니다.
오늘 하루를 돌아보며 그런 순간이 있었는지 생각해 봅니다. 금세 지나가서 잊고 있던 작은 장면 하나가 뒤늦게 떠오를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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