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떠올릴 때, 그 사람이 자주 하던 말보다 사소한 몸짓 하나가 먼저 생각나기도 합니다. 길가에 핀 꽃을 보려고 걸음을 늦추던 모습, 멀리서 새소리가 들리면 잠깐 이야기를 멈추던 모습 같은 것들입니다. 함께 있을 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시간이 흐르고 나면 그런 장면이 오래 남습니다.
오늘은 토머스 하디의 「그 후에」를 읽어보려 합니다. 제목만 보면 무슨 일이 지나간 뒤의 이야기인지 궁금해집니다. 시인이 바라보는 것은 자신이 세상을 떠난 뒤입니다. 조금 쓸쓸한 이야기일 것 같지만, 시 안으로 들어가면 푸른 잎이 흔들리고, 새가 내려앉고, 작은 고슴도치가 잔디밭을 건너갑니다. 떠나고 난 뒤를 생각하는 동안, 지금 살아 있는 것들이 오히려 가까이 다가옵니다.
그는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었던 걸까요.
“He was a man who used to notice such things”
“그는 이런 것들을 눈여겨보던 사람이었지.”
여기서 ‘이런 것들’은 오월의 나뭇잎입니다. 막 자아낸 비단처럼 얇고 섬세한 잎이 바람에 날개처럼 움직이는 모습이지요. 누구나 볼 수 있는 풍경이지만, 누구나 그 앞에서 걸음을 늦추는 것은 아닐 겁니다. 하디는 이웃들이 그런 잎을 보다가 자신을 잠깐 떠올려주기를 바라는 듯합니다.
『테스』의 소설가로 익숙한 하디는 시도 오래 썼습니다. 「그 후에」는 1917년에 나온 시집 『환영의 순간들』(Moments of Vision)의 마지막에 실렸습니다. 자신의 부재를 생각하는 시의 끝자리에 어떤 말이 남는지, 서두르지 않고 읽어보면 좋겠습니다.
원문 — Afterwards
Thomas Hardy (1840–1928)
When the Present has latched its postern behind my tremulous stay,
And the May month flaps its glad green leaves like wings,
Delicate-filmed as new-spun silk, will the neighbours say,
“He was a man who used to notice such things”?
If it be in the dusk when, like an eyelid's soundless blink,
The dewfall-hawk comes crossing the shades to alight
Upon the wind-warped upland thorn, a gazer may think,
“To him this must have been a familiar sight.”
If I pass during some nocturnal blackness, mothy and warm,
When the hedgehog travels furtively over the lawn,
One may say, “He strove that such innocent creatures should come to no harm,
But he could do little for them; and now he is gone.”
If, when hearing that I have been stilled at last, they stand at the door,
Watching the full-starred heavens that winter sees,
Will this thought rise on those who will meet my face no more,
“He was one who had an eye for such mysteries”?
And will any say when my bell of quittance is heard in the gloom,
And a crossing breeze cuts a pause in its outrollings,
Till they rise again, as they were a new bell's boom,
“He hears it not now, but used to notice such things”?
※ 낯선 표현 몇 가지만 짚어봅니다. ‘postern’은 작은 뒷문, ‘dewfall-hawk’는 해 질 무렵 활동하는 쏙독새를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bell of quittance’는 여기서 세상을 떠난 이를 보내는 조종(弔鐘)을 뜻합니다.
우리말로 읽기
그 후에
‘현재’가 떨리던 나의 한때를 뒤로하고 뒷문을 걸어 잠근 뒤,
오월이 싱그러운 초록 잎들을 날개처럼 펄럭일 때,
막 자아낸 비단처럼 여린 그 잎들을 보며, 이웃들은 말할까,
“그는 이런 것들을 눈여겨보던 사람이었지” 하고?
그때가 황혼이라면, 소리 없이 눈꺼풀을 깜박이듯
쏙독새가 어스름을 가로질러 날아와
바람에 휘어진 언덕 위 산사나무에 내려앉을 때, 바라보던 누군가는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에게는 무척 익숙한 풍경이었겠지.”
나방이 날아다니는 따뜻하고 캄캄한 밤에 내가 떠난다면,
고슴도치가 잔디밭을 남몰래 가로질러 갈 때,
누군가는 말할지도 모른다, “그는 저 순한 생명들이 해를 입지 않도록 애썼지.
하지만 그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일은 적었고, 이제 그는 떠나고 없구나.”
내가 마침내 고요해졌다는 소식을 듣고, 사람들이 문가에 서서
겨울이면 펼쳐지는 별 가득한 하늘을 바라본다면,
다시는 내 얼굴을 만나지 못할 이들에게 이런 생각이 떠오를까,
“그는 저런 신비로움을 알아보는 눈이 있었지” 하고?
어둠 속에서 나를 보내는 종소리가 들리고,
스쳐 가는 바람이 그 울림을 잠깐 끊었다가,
마치 다른 종이 새로 울리듯 그 소리가 다시 퍼질 때, 누군가는 말할까,
“이제 그는 듣지 못하지만, 이런 것들을 눈여겨듣곤 했지” 하고?
※ 이 글을 위해 원문에서 직접 옮긴 번역입니다.
오월의 잎에서 겨울의 별까지
첫 행은 조금 낯섭니다. ‘현재’가 뒷문을 걸어 잠근다고 하니까요. 지금이라는 시간 안에 잠시 머물던 사람이 떠나고, 그 뒤로 문이 닫히는 모습을 떠올려봅니다. 자신의 삶을 두고 쓴 ‘떨리던 한때’라는 말에도 어딘가 조심스러운 기색이 있습니다. 오래 머물 수 있으리라 장담하지 못하는 사람의 마음처럼 읽힙니다.
그 문이 닫힌 뒤에도 오월의 잎은 움직입니다. 하디는 그 잎을 막 자아낸 비단에 견줍니다. 잎의 초록빛만이 아니라 빛을 통과시킬 듯한 얇은 결까지 보고 있었던 것이겠지요. 떠나는 사람의 마음을 따라 읽다가도, 잠시 그 여린 잎의 감촉을 생각하게 됩니다.
다음 연에서는 눈길이 황혼 속으로 옮겨갑니다. 새가 내려앉는 순간은 눈꺼풀을 소리 없이 깜박이는 모습과 닮았습니다. 그 짧고 조용한 움직임을 붙잡으려면 꽤 오래 바라보고 있어야 했을 것 같습니다. 바람에 휘어진 나무도 그저 배경으로 지나가지 않습니다. 나무의 모양에는 그 언덕을 지나간 바람의 시간이 남아 있습니다.
그러다 시는 따뜻한 밤의 잔디밭으로, 다시 겨울의 별이 가득한 하늘로 넓어집니다. 자신이 떠날 계절을 정하지 않은 채, 어느 때이든 남아 있을 풍경을 하나씩 헤아리는 듯합니다. 그 풍경을 마주한 누군가의 마음에 자신도 잠깐 함께 머물 수 있을지 묻고 있습니다.
고슴도치가 지나가는 밤
이 시에서 오래 머물게 되는 대목은 고슴도치가 나오는 세 번째 연입니다. 캄캄한 잔디밭을 조심스레 건너가는 작은 동물 한 마리. 사람의 눈에 띄지 않는 동안에도 자기 삶을 살아가는 생명입니다.
앞에서는 잎과 새를 바라보던 사람이, 여기에서는 작은 생명이 다치지 않도록 애쓰던 사람으로 기억됩니다. 바라보는 마음이 보살피려는 마음으로 조금 더 나아갑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 줄이 마음에 걸립니다.
“하지만 그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일은 적었고, 이제 그는 떠나고 없구나.”
애썼다는 말 뒤에 충분히 해내지는 못했다는 아쉬움이 따라옵니다. 하디는 이 한 줄을 지우지 않습니다. 마음을 쓴다고 해서 모든 생명을 지킬 수는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듯합니다.
무언가를 아끼는 마음에는 이런 안타까움도 함께 있는 것 같습니다. 다 해주지 못했기에 마음에 남는 일, 지나고 나서 조금 더 살펴볼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하게 되는 일 말입니다. 고슴도치는 여전히 잔디밭을 건너가고, 그 모습을 걱정하던 사람의 자리는 비어 있습니다. 짧은 네 줄 속에 그 빈자리가 조용히 드러납니다.
종소리 사이에 남는 사람
마지막 연에서는 눈으로 보던 풍경이 소리로 바뀝니다. 자신을 보내는 종이 울리고, 바람이 그 울림을 잠시 끊어놓습니다. 그러다 다시 들려오는 소리는 마치 다른 종이 새로 울리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종소리 그 자체보다, 바람 때문에 잠깐 멀어졌다가 돌아오는 소리에 마음이 갑니다. 평소라면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 작은 변화입니다. 하디는 자신의 죽음을 알리는 종을 상상하면서도 그 소리가 공기 속에서 어떻게 달라지는지 듣고 있습니다.
첫 연의 “이런 것들을 눈여겨보던 사람”이라는 말이 끝에서 돌아옵니다. 다만 이제는 그가 더 이상 듣지 못한다는 말이 앞에 놓입니다. 같은 말인데도 처음보다 빈자리가 조금 더 크게 느껴집니다.
시 속의 이웃들은 아직 실제로 이 말을 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모두 시인이 미리 떠올려보는 목소리입니다. ‘말할까’, ‘생각할지도 모른다’라는 조심스러운 물음 속에는 기억되고 싶은 마음과, 그것을 자신이 정할 수는 없다는 망설임이 함께 있는 듯합니다.
누군가가 떠난 뒤에도 그 사람이 유심히 보던 것들은 남아 있을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잎이 흔들리는 어느 날, 또는 멀리서 종소리가 들리는 저녁에 문득 한 사람이 생각나기도 하겠지요. 그 사람이 곁에 있었다면 지금 무엇을 바라보고 있었을지 잠깐 짐작해보게 됩니다.
「그 후에」를 읽고 나니, 오늘 지나치는 풍경도 조금 천천히 보고 싶어집니다. 풀숲에서 작은 소리가 난다면 잠시 걸음을 늦춰도 좋겠습니다. 무엇이 거기에서 움직이고 있는지, 그동안 미처 보지 못했던 것은 없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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