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쁜 하루를 보내다가 문득 아주 조용한 곳으로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사람들의 목소리도, 자동차 소리도 들리지 않는 곳.
아침이면 새소리에 눈을 뜨고, 저녁이면 물결 소리를 들으며 하루를 마치는 곳.
실제로 그곳으로 떠날 수 없어도 마음속에는 그런 장소 하나쯤 남아 있지 않을까요?
W. B. Yeats의 「The Lake Isle of Innisfree」를 읽으면 그런 생각이 듭니다.
이 시의 화자는 지금 이니스프리에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도시의 회색 포장도로 위에 서 있습니다.
그런데 그의 마음속에서는 아주 먼 곳의 호숫물이 끊임없이 출렁이고 있습니다.
여러분에게도 가끔 마음속에서 들려오는 장소가 있으신가요?
The Lake Isle of Innisfree
W. B. Yeats (1865–1939)
I will arise and go now, and go to Innisfree,
And a small cabin build there, of clay and wattles made;
Nine bean-rows will I have there, a hive for the honey-bee,
And live alone in the bee-loud glade.
And I shall have some peace there, for peace comes dropping slow,
Dropping from the veils of the morning to where the cricket sings;
There midnight’s all a glimmer, and noon a purple glow,
And evening full of the linnet’s wings.
I will arise and go now, for always night and day
I hear lake water lapping with low sounds by the shore;
While I stand on the roadway, or on the pavements grey,
I hear it in the deep heart’s core.
이니스프리 호수의 섬
이제 나는 일어나 이니스프리로 가리라.
그곳에 진흙과 나뭇가지로 작은 오두막 하나를 짓고,
아홉 줄의 콩을 심고 꿀벌을 위한 벌통 하나를 두어
벌들의 소리 가득한 숲속 빈터에서 홀로 살아가리라.
그곳에서 나는 평화를 얻으리라. 평화는 천천히 내려오기에,
아침의 베일에서 귀뚜라미 우는 곳까지 방울방울 내려오기에.
그곳의 한밤은 온통 희미하게 빛나고, 한낮은 보랏빛으로 물들며,
저녁은 홍방울새의 날갯짓으로 가득하리라.
이제 나는 일어나 가리라. 밤이나 낮이나 언제나
호숫가에 낮게 찰랑이는 물소리가 들려오기 때문이다.
내가 길 위에 서 있을 때에도, 회색 포장도로 위에 서 있을 때에도,
나는 그 소리를 마음 가장 깊은 곳에서 듣는다.
“I will arise and go now”
시의 첫 문장은 망설이지 않습니다.
“I will arise and go now.”
이제 나는 일어나 가리라.
언젠가 시간이 나면 가겠다는 말이 아닙니다.
지금 일어나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가 꿈꾸는 삶은 놀랄 만큼 소박합니다.
작은 오두막 하나.
아홉 줄의 콩.
벌통 하나.
그리고 혼자 살아갈 작은 숲속 빈터.
화려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오히려 도시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하나씩 내려놓은 뒤 마지막에 남는 것들처럼 보입니다.
우리도 가끔 비슷한 상상을 하지 않나요?
복잡한 일이 많아질수록 오히려 원하는 것은 더 단순해질 때가 있습니다.
평화는 천천히 내려옵니다
이 시에서 제가 오래 머물게 되는 구절은 이것입니다.
“for peace comes dropping slow”
평화는 천천히 내려온다.
Yeats는 평화가 갑자기 찾아온다고 하지 않습니다.
아침 안개가 내려앉듯,
빛이 조금씩 번지듯,
천천히 내려온다고 합니다.
이 표현이 참 좋습니다.
우리는 마음이 힘들 때 빨리 평온해지고 싶어 합니다. 어디론가 떠나면 곧 괜찮아질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하지요.
하지만 마음의 평화라는 것은 그렇게 단번에 찾아오는 것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조금씩,
아주 천천히,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내려오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여러분도 그런 경험이 있으셨나요?
어느 날 갑자기 괜찮아진 것이 아니라,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아, 이제 조금 편안해졌구나’ 하고 알게 되는 순간 말입니다.
소리로 채워진 이니스프리
흥미롭게도 이 시의 자연은 조용하기만 하지 않습니다.
벌들이 윙윙거립니다.
귀뚜라미가 웁니다.
새들이 날아다닙니다.
호숫물이 찰랑거립니다.
그런데 이 소리들은 도시의 소음과는 다릅니다.
화자를 방해하는 소리가 아니라 오히려 그를 평화롭게 하는 소리입니다.
특히 마지막 연의 호숫물 소리는 중요합니다.
“I hear lake water lapping with low sounds by the shore”
호숫물이 낮은 소리를 내며 해변을 찰랑거립니다.
이니스프리는 눈으로 보는 장소이면서 동시에 귀로 기억하는 장소입니다.
그래서 화자는 그곳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도 떠날 수가 없습니다.
그 소리가 계속 마음속에서 들리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요?
마지막 두 행에 이르러서야 우리는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됩니다.
화자는 지금 호숫가에 서 있지 않습니다.
“While I stand on the roadway, or on the pavements grey”
그는 길 위에 있습니다.
회색 포장도로 위에 서 있습니다.
앞의 두 연에서 그토록 생생하게 그려졌던 이니스프리는 지금 그의 눈앞에 있는 풍경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는 도시 한가운데 서서 그곳을 떠올리고 있습니다.
이 장면 때문에 이 시가 단순한 자연 예찬시보다 조금 더 깊게 다가옵니다.
몸은 도시 안에 있는데 마음은 호숫가에 있습니다.
아마 우리에게도 그런 장소가 있을 겁니다.
어린 시절 살았던 동네일 수도 있고,
오래전 걸었던 산길일 수도 있고,
바닷가일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다시 갈 수 없는 곳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곳의 소리와 냄새와 빛은 마음 한편에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I hear it in the deep heart’s core.”
마지막 한 행입니다.
“I hear it in the deep heart’s core.”
나는 그것을 마음 가장 깊은 곳에서 듣는다.
Yeats는 “기억한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듣는다”고 했습니다.
호수는 멀리 있지만 물소리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니스프리는 지도 위에 있는 섬인 동시에 화자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장소가 됩니다.
어쩌면 우리가 어떤 장소를 사랑한다는 것도 이런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그곳에 계속 살고 있어서가 아니라,
떠나온 뒤에도 그곳이 우리 안에서 계속 살아 있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
우리에게도 이니스프리가 있을까요?
「The Lake Isle of Innisfree」를 읽고 나면 거창한 질문보다는 작은 기억 하나가 떠오릅니다.
내게 이니스프리는 어디일까.
꼭 아름다운 관광지일 필요는 없습니다.
오래된 골목일 수도 있고,
학교 운동장일 수도 있고,
혼자 걸었던 작은 길이나 어느 날 바라보았던 바다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아직 가보지 않은 곳일 수도 있습니다.
삶이 복잡해질 때마다 마음속으로 그려보는 곳.
그곳에 가면 조금 천천히 살아도 될 것 같은 곳.
Yeats에게는 그것이 이니스프리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아직 회색 포장도로 위에 서 있습니다.
그럼에도 호수의 물소리를 듣습니다.
“I hear it in the deep heart’s core.”
그 한 행 때문에 저는 이 시가 단순히 ‘자연으로 떠나자’는 이야기는 아니라고 느낍니다.
우리가 현실에서 당장 떠날 수 없더라도 마음속에는 돌아갈 장소 하나를 간직할 수 있다는 이야기처럼 들립니다.
오늘 잠깐 눈을 감아보면 어떨까요?
그리고 마음 가장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있는지 한번 들어보는 겁니다.
그곳이 어쩌면 우리 자신의 이니스프리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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