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로 들어서면 꽃이 진 자리보다 나뭇잎에 먼저 눈이 갑니다. 아직 푸른 잎 사이에서 빛깔이 달라진 잎을 찾아보기도 하고, 길 위에 떨어진 잎 하나에 잠시 걸음을 늦추기도 합니다. 무언가가 지고 있다는 사실이 꼭 쓸쓸하게만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계절이 바뀌는 모습을 조금 더 바라보고 싶어집니다.
오늘은 낙엽이 떨어지고 밤이 길어지는 것을 기꺼이 맞이하는 시를 읽어봅니다. 『폭풍의 언덕』의 작가로 익숙한 에밀리 브론테의 「떨어져라, 낙엽이여」입니다. 여덟 행밖에 되지 않는 짧은 시인데, 가을을 바라보는 눈길이 사뭇 다릅니다. 꽃이 시들어도 좋고, 낮이 짧아져도 좋다고 합니다. 이 사람에게는 어떤 계절이 다가오고 있는 걸까요.
낙엽 한 장이 건네는 기쁨
Every leaf speaks bliss to me,
Fluttering from the autumn tree.
가을 나무에서 팔랑이며 내려오는
잎 하나하나가 내게 더없는 기쁨을 말해준다.
낙엽이 말을 건넨다는 표현 앞에서 잠시 멈추게 됩니다. 나무를 떠난 잎이 땅에 닿기까지, 그 짧은 움직임을 바라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잎은 팔랑이고, 그 모습에서 기쁨을 듣습니다.
‘bliss’는 깊고 충만한 행복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떨어지는 잎을 보며 이토록 큰 기쁨을 느낀다고 하니 조금 뜻밖입니다. 하지만 누군가는 꽃이 피는 날보다 바람이 서늘해지는 날에 마음이 편안해지기도 합니다. 이 시를 읽을 때에는 그런 마음을 먼저 떠올려도 좋겠습니다.
원문 만나기
Fall, Leaves, Fall
Emily Brontë (1818–1848)
Fall, leaves, fall; die, flowers, away;
Lengthen night and shorten day;
Every leaf speaks bliss to me,
Fluttering from the autumn tree.
I shall smile when wreaths of snow
Blossom where the rose should grow;
I shall sing when night’s decay
Ushers in a drearier day.
우리말로 읽기
떨어져라, 낙엽이여
떨어져라, 잎들아, 떨어져라. 꽃들아, 시들어 사라져라.
밤은 길어지고 낮은 짧아져라.
잎 하나하나가 내게 더없는 기쁨을 말해준다,
가을 나무에서 팔랑이며 내려오면서.
장미가 피어날 자리에 눈이 화환처럼
피어날 때, 나는 미소 지으리라.
밤이 스러지며 더욱 쓸쓸한 하루를
데려올 때, 나는 노래하리라.
떠나는 계절을 붙잡지 않는 목소리
첫 행의 목소리는 생각보다 힘이 있습니다. 잎이 떨어진다고 바라보는 데서 그치지 않고, 떨어지라고 말합니다. 꽃에게도 시들어 사라지라고 합니다. 아름다운 것을 조금만 더 붙잡아두려는 마음과는 다른 쪽으로 시가 움직입니다.
그렇다고 꽃을 싫어한다고 읽을 필요는 없을 듯합니다. 한 계절의 아름다움이 지나간 자리에 무엇이 오는지, 이 사람은 이미 기다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꽃이 진 뒤의 풍경에도 자신이 좋아하는 무언가가 있다는 듯이 말입니다.
둘째 행에서는 밤이 길어지고 낮이 짧아집니다. 우리라면 아쉬워할 수도 있는 변화를 화자는 재촉합니다. 환한 시간이 줄어드는 것을 반기는 마음은 어떤 것일까요. 긴 밤이 주는 고요함일 수도 있고, 바깥의 분주함에서 조금 물러날 수 있다는 안도감일 수도 있겠습니다. 시는 이유를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읽는 사람도 자신이 편안해지는 계절을 조용히 떠올릴 여지가 생깁니다.
앞의 두 행을 지나면, 힘 있게 계절을 부르던 목소리가 작은 잎 하나로 향합니다. 커다란 변화에 대한 말이 팔랑이는 낙엽의 움직임에 닿습니다. 이 시의 기쁨은 그렇게 눈앞의 작은 풍경에서 모습을 얻습니다.
장미가 피던 자리에 눈이 피어납니다
시의 뒷부분에는 벌써 겨울이 와 있습니다. 장미가 자랄 자리에 눈이 쌓입니다. 그런데 시인은 눈이 ‘덮인다’고 하지 않고 ‘피어난다’고 합니다.
‘wreaths of snow’는 화환처럼 둥글게 모이거나 둘러진 눈을 떠올리게 합니다. 번역에서도 그 모양을 살려 ‘눈이 화환처럼 피어날 때’라고 옮겼습니다. 장미의 빛깔은 사라졌지만, 그 자리에 흰 눈이 다른 모양의 꽃을 피웁니다.
꽃이 없는 계절에도 꽃의 말을 쓰고 있다는 점이 마음에 남습니다. 시들고 사라지는 모습을 바라보면서도, 그 뒤에 오는 풍경을 빈자리로만 남겨두지 않습니다. 장미가 있던 곳을 기억하면서 눈이 만든 새 모습을 바라봅니다.
우리가 익숙한 풍경을 오래 바라볼 때에도 비슷한 일이 생깁니다. 잎이 무성할 때에는 보이지 않던 가지의 모양이 겨울에 드러나고, 꽃이 사라진 화단 위에 서리가 내려앉습니다. 화려함이 줄어든 뒤에야 눈에 들어오는 것들이 있습니다. 이 시의 미소도 그런 발견에서 오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더 쓸쓸한 날에도 노래하겠다는 말
마지막 두 행은 쉽게 지나가기 어렵습니다. 밤이 물러나면 밝은 하루가 올 법한데, 시는 ‘더욱 쓸쓸한 하루’를 데려옵니다. 그리고 그때 노래하겠다고 합니다.
여기서 ‘night’s decay’는 밤이 쇠하고 스러지는 것, 곧 밤이 끝나가는 모습을 뜻합니다. 하지만 새날이 왔다고 풍경까지 환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겨울의 아침은 밤의 어둠을 걷어내고도 여전히 흐리고 황량할 수 있습니다.
화자는 그 쓸쓸함을 없던 일로 만들지 않습니다. ‘drearier’라는 말을 그대로 남겨둡니다. 다가올 하루가 더욱 쓸쓸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은 노래하겠다고 합니다. 그 목소리에는 조용한 고집 같은 것이 느껴집니다.
모든 사람이 밝고 따뜻한 날에만 마음을 여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흐린 하늘과 긴 밤이 오히려 자신의 마음과 가까울 수 있습니다. 세상의 표정과 내 마음의 표정이 잠시 닮아 있을 때, 설명하기 어려운 편안함이 찾아오기도 합니다.
다만 이 시를 곧바로 ‘어려워도 밝게 살아야 한다’는 말로 옮겨놓고 싶지는 않습니다. 화자는 우리에게 웃거나 노래하라고 권하지 않습니다. 자신은 그렇게 하겠다고 말할 뿐입니다. 그 덕분에 우리는 그 마음을 따라가 볼 수도 있고, 조금 떨어져 바라볼 수도 있습니다.
저마다 마음이 머무는 계절
짧은 시 안에서 가을은 겨울로 넘어갑니다. 잎이 떨어지고, 꽃이 시들고, 눈이 피어납니다. 그 흐름을 따라 화자의 마음은 기쁨에서 미소로, 다시 노래로 이어집니다.
읽고 나면 처음의 낙엽이 조금 다르게 보입니다. 나무에서 떨어지는 잎을 보며 무엇이 끝났다고 느낄 수도 있겠지만, 누군가에게는 기다리던 시간이 시작되는 모습일 수도 있겠습니다.
아직 잎이 많이 남아 있는 나무 아래를 지난다면, 먼저 떨어진 한 장을 잠시 바라봐도 좋겠습니다. 기쁨을 느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저 그 작은 움직임을 반겼던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늘 보던 가을에 눈길이 한 번 더 머물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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