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와 한참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왔는데도, 정작 하고 싶었던 말은 꺼내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말했지만, 그 일을 겪는 동안 마음이 어땠는지는 설명하기 어려웠던 것이겠지요. 가까운 사람에게도 잘 전해지지 않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느껴보신 적 있으실까요.
오늘 읽을 존 클레어의 「나는 존재한다」는 그런 외로움보다 훨씬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시입니다. 누구도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다는 탄식으로 시작해, 마지막에는 풀과 하늘 사이에서 조용히 잠들고 싶다는 바람에 닿습니다. 곧바로 위로의 말을 찾기보다, 이 사람이 어떤 마음으로 그곳까지 갔는지 천천히 따라가 보려 합니다.
나는 여기 있는데
I am! yet what I am none cares or knows,
나는 존재한다! 그러나 내가 어떤 존재인지 아무도 마음 쓰지 않고 알지도 못한다.
‘나는 존재한다’는 말만 떼어놓으면 단단한 선언처럼 들립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에 아무도 자신을 알지 못한다는 말이 이어집니다. 내가 여기 있다는 사실은 분명한데, 그 사실이 다른 사람에게는 닿지 않는 듯합니다.
우리는 이름이나 직업, 누군가와의 관계를 통해 자신을 소개하곤 합니다. 하지만 그런 말들을 다 하고도 아직 설명하지 못한 내가 남아 있지 않을까요. 이 시의 첫 문장은 그 틈을 아프게 드러냅니다.
클레어는 영국의 농촌에서 자라 자연의 작은 움직임을 세심하게 시에 담았던 사람입니다. 그의 삶에는 가난과 정신적 고통이 있었고, 오랜 세월 정신요양시설에서 지냈습니다. 그 배경을 알고 읽으면 첫 문장의 외로움이 더 가까이 다가옵니다. 다만 한 사람의 시를 병력으로만 설명하지 않고, 그가 남긴 말 자체에도 귀를 기울이고 싶습니다.
원문 만나기
I Am!
John Clare (1793–1864)
I am! yet what I am none cares or knows,
My friends forsake me like a memory lost;
I am the self-consumer of my woes,
They rise and vanish in oblivious host,
Like shades in love and death’s oblivion lost;
And yet I am! and live with shadows tost
Into the nothingness of scorn and noise,
Into the living sea of waking dreams,
Where there is neither sense of life nor joys,
But the vast shipwreck of my life’s esteems;
And e’en the dearest—that I loved the best—
Are strange—nay, rather stranger than the rest.
I long for scenes where man has never trod;
A place where woman never smil’d or wept;
There to abide with my creator, God,
And sleep as I in childhood sweetly slept:
Untroubling and untroubled where I lie;
The grass below—above the vaulted sky.
※ ‘tost’는 ‘tossed’, ‘e’en’은 ‘even’, ‘smil’d’는 ‘smiled’를 줄이거나 옛 방식으로 적은 표현입니다. 원문의 표기를 그대로 두었습니다.
우리말로 읽기
나는 존재한다
나는 존재한다! 그러나 내가 어떤 존재인지 아무도 마음 쓰지 않고 알지도 못한다.
친구들은 잊힌 기억처럼 나를 버린다.
나는 내 슬픔을 홀로 삼키는 사람,
슬픔들은 망각 속 무리를 이루어 솟았다 사라진다,
사랑과 죽음의 망각에 묻힌 그림자들처럼.
그래도 나는 존재한다! 그림자들과 함께 휩쓸리며 살아간다,
경멸과 소음의 공허 속으로,
깨어서 꾸는 꿈들이 출렁이는 바다 속으로.
그곳에는 살아 있다는 느낌도 기쁨도 없고,
내 삶에서 소중히 여기던 것들이 거대한 난파의 잔해로 남아 있을 뿐.
가장 귀한 사람들마저—내가 가장 사랑했던 이들마저—
낯설다—아니, 다른 누구보다 더 낯설다.
나는 사람의 발길이 한 번도 닿지 않은 풍경을 그린다.
어떤 여인도 웃거나 울어본 적 없는 곳을.
그곳에서 나를 지으신 하나님과 함께 머물며,
어린 시절 달게 잠들었던 것처럼 잠들고 싶다.
누구도 괴롭히지 않고, 나 또한 괴로움 없이 누워,
아래에는 풀, 위에는 둥글게 펼쳐진 하늘.
가까운 사람이 더 낯설게 느껴질 때
첫 연에는 슬픔을 홀로 삼킨다는 표현이 나옵니다. ‘self-consumer’는 자신의 슬픔을 스스로 소모하고 떠안는 모습을 떠올리게 합니다. 밖으로 전하지 못한 마음이 안에서 맴돌고, 떠올랐다가 사라지기를 되풀이합니다.
그런데 그 와중에도 첫 문장의 말이 다시 나타납니다. “그래도 나는 존재한다!”
처음보다 조금 다르게 들리지 않으실까요. 자신을 힘 있게 내세우는 말이라기보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자리에서 자기 존재를 놓치지 않으려는 말처럼 느껴집니다. 흔들리는 사람에게도 자신이 여기 있다는 감각은 남아 있습니다.
둘째 연에서 그 흔들림은 바다가 됩니다. 어제 읽었던 메이스필드의 바다가 다시 돌아가고 싶은 곳이었다면, 이 시의 바다는 깨어서 꾸는 꿈들이 뒤섞여 출렁이는 곳입니다. 화자는 그 안에서 삶의 기쁨을 찾지 못합니다. 한때 소중히 여겼던 것들이 난파의 잔해처럼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가장 아픈 말은 사랑했던 사람들을 향합니다. 그들이 다른 누구보다 더 낯설다고 합니다. 처음부터 모르는 사람에게 느끼는 거리와, 잘 안다고 믿었던 사람에게 느끼는 거리는 다를 것입니다. 기대했던 만큼, 함께한 시간이 있었던 만큼 그 낯섦이 더 크게 다가오는 것은 아닐까요.
그렇다고 이 구절만으로 주변 사람들이 실제로 모두 그를 버렸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시가 우리에게 전하는 것은 그 순간 화자가 느끼는 단절의 깊이입니다. 같은 방에 있어도 닿을 수 없다고 느껴지는 마음의 거리입니다.
아무도 없는 곳을 바라는 마음
마지막 연에서 화자는 사람이 한 번도 발을 디디지 않은 곳을 바랍니다. 누구도 웃거나 울지 않았던 자리입니다. 앞선 두 연에 경멸과 소음, 낯설어진 사람들이 있었다면, 여기에는 아직 아무 사연도 쌓이지 않은 풍경이 펼쳐집니다.
사람 때문에 외로웠는데 사람이 없는 곳을 찾는다는 것이 얼핏 모순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혼자 있는 시간과, 사람들 사이에서 혼자라고 느끼는 시간은 서로 다르지 않을까요. 누구에게도 자신을 설명할 필요가 없는 곳에서 오히려 마음을 놓을 수도 있겠습니다.
그곳에서 함께 머물고 싶은 존재로 화자는 자신을 지으신 하나님을 부릅니다. 사람들에게 전해지지 않았던 자신을, 처음부터 알고 있을 존재를 떠올리는 듯합니다. 이 구절을 읽으며 신앙의 위안을 느끼는 독자도 계실 것입니다. 자신의 믿음과는 별개로, 아무 설명 없이 받아들여지고 싶은 마음을 생각해 볼 수도 있겠습니다.
화자가 그곳에서 하고 싶은 일은 뜻밖에도 소박합니다. 어린 시절처럼 달게 잠드는 것입니다.
우리는 때로 대단한 변화를 바란다고 생각하다가도, 마음을 오래 들여다보면 그저 편히 쉬고 싶었다는 것을 깨닫곤 하지요. 이 시에서도 거칠게 출렁이던 마음이 어린 시절의 잠에 이르러 조금 느려집니다.
누구도 괴롭히지 않고, 나 또한 괴로움 없이
Untroubling and untroubled where I lie;
누구도 괴롭히지 않고, 나 또한 괴로움 없이 누워,
서로 닮은 두 단어가 나란히 놓여 있습니다. 먼저는 다른 이를 괴롭히지 않는 것, 다음은 자신도 괴로움을 겪지 않는 것입니다. 어느 한쪽만 편안한 상태가 아니라, 서로에게 아픔을 주지 않아도 되는 자리를 바랍니다.
이 구절에는 지친 사람의 조심스러움이 느껴집니다. 자신이 다치지 않기를 바라면서도, 다른 이에게 짐이 되거나 상처를 주고 싶지 않은 마음까지 함께 놓여 있습니다. 그래서 단순히 ‘평온하게’라고 옮기기에는 남겨두고 싶은 뜻이 많습니다.
이어지는 마지막 행에서는 말이 아주 간결해집니다. 아래에는 풀, 위에는 하늘이 있습니다. 앞에서 만나던 소음과 난파의 이미지가 물러나고, 한 사람이 누울 자리만 남습니다.
그 잠을 죽음의 안식으로 읽을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머물기를 바라는 말에는 그런 여운도 있습니다. 그러나 시가 품은 바람을 하나의 뜻으로 서둘러 닫고 싶지는 않습니다. 고통에서 벗어나 쉬고 싶은 마음과 어린 시절의 평안을 되찾고 싶은 마음이 그 안에 함께 있는 것 같습니다.
한 사람의 말 곁에 머무는 일
이 시를 다 읽었다고 해서 첫머리의 외로움이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마지막 풍경은 화자가 도착한 곳이라기보다, 간절히 바라는 곳입니다. 그래서 풀과 하늘의 고요함에도 쓸쓸함이 조금 남습니다.
우리가 이 사람에게 어떤 말을 건넬 수 있을지는 쉽게 떠오르지 않습니다. 괜찮아질 것이라고 서둘러 말하는 것보다, 그가 남긴 열여덟 행을 끝까지 읽는 일이 먼저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누군가의 마음을 전부 이해할 수는 없어도, 그 말을 중간에 놓지 않고 듣는 일은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나는 존재한다”는 첫 문장이 이제는 조금 다른 무게로 들립니다. 그 말을 했던 사람이 있었고,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우리가 잠시 그의 목소리 앞에 머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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