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를 보고 돌아왔는데도 한동안 파도 소리가 귀에 남을 때가 있습니다. 일상으로 돌아와 하던 일을 하다가도, 문득 그 넓은 수평선이 떠오릅니다. 바다에서 특별히 무엇을 하지 않았어도 그렇습니다. 그곳에 두고 온 시간이 조금은 다른 속도로 흘렀던 것 같습니다.
오늘은 다시 바다로 가고 싶다는 마음을 담은 시를 읽어봅니다. 존 메이스필드의 「바다를 향한 열망」입니다. 바람과 돛, 물보라가 가득한 시인데, 끝에 이르면 뜻밖에도 조용한 잠과 꿈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떠나고 싶은 마음은 어디쯤에서 쉬고 싶은 마음과 만나는 걸까요.
배 한 척과 별 하나
And all I ask is a tall ship and a star to steer her by,
내가 바라는 것은 돛대 높은 배 한 척, 그리고 길잡이가 되어줄 별 하나,
바다로 나가려는 사람이 바라는 것치고는 참 단출합니다. 배 한 척과 별 하나라니요. 하지만 넓은 바다 한가운데 있다고 생각하면, 이 두 가지가 조금 다르게 다가옵니다. 몸을 실을 곳이 있고, 어디로 가야 할지 가늠할 빛이 있습니다. 많은 것을 갖추지 않아도 길을 떠날 수 있을 듯합니다.
메이스필드는 젊은 시절 실제로 배를 타고 항해했던 시인입니다. 1902년 시집 『Salt-Water Ballads』에 실린 이 작품에도 바다를 멀리서 바라보기만 해서는 알기 어려운 감각이 담겨 있습니다. 파도에 밀려 손으로 전해지는 키의 움직임, 흔들리는 돛, 얼굴에 날아드는 물보라가 차례로 찾아옵니다.
제목의 ‘fever’는 열병을 뜻합니다. 여기서는 바다를 향한 마음이 몸의 열기처럼 가라앉지 않는다고 느껴집니다. 「바다를 향한 열망」이라는 우리말 제목에는 그 간절함을 담았습니다.
원문 만나기
John Masefield (1878–1967)
Sea-Fever
I must go down to the seas again, to the lonely sea and the sky,
And all I ask is a tall ship and a star to steer her by,
And the wheel’s kick and the wind’s song and the white sail’s shaking,
And a grey mist on the sea’s face, and a grey dawn breaking,
I must go down to the seas again, for the call of the running tide
Is a wild call and a clear call that may not be denied;
And all I ask is a windy day with the white clouds flying,
And the flung spray and the blown spume, and the sea-gulls crying.
I must go down to the seas again, to the vagrant gypsy life,
To the gull’s way and the whale’s way where the wind’s like a whetted knife;
And all I ask is a merry yarn from a laughing fellow-rover,
And quiet sleep and a sweet dream when the long trick’s over.
※ 마지막 연의 ‘yarn’은 이야기, ‘trick’은 배에서 맡는 당직 시간을 뜻합니다. ‘gypsy’는 당시 떠돌이 삶을 떠올리게 하던 표현으로, 여기서는 ‘떠돌이의 삶’으로 옮겼습니다.
우리말로 읽기
바다를 향한 열망
나는 다시 바다로 가야 한다, 외로운 바다와 하늘로,
내가 바라는 것은 돛대 높은 배 한 척, 그리고 길잡이가 되어줄 별 하나,
손에 툭툭 전해지는 키의 움직임과 바람의 노래와 흰 돛의 흔들림,
바다 위의 잿빛 안개와 밝아오는 잿빛 새벽.
나는 다시 바다로 가야 한다, 밀려 흐르는 조수의 부름은
거칠고도 또렷하여 차마 거스를 수 없는 부름이기에,
내가 바라는 것은 흰 구름이 날아가는 바람 부는 날,
솟구치는 물보라와 흩날리는 거품, 그리고 갈매기의 울음.
나는 다시 바다로 가야 한다, 정처 없는 떠돌이의 삶으로,
바람이 날 선 칼 같은 곳, 갈매기가 가고 고래가 가는 길로,
내가 바라는 것은 웃음 띤 길동무가 들려주는 흥겨운 이야기,
그리고 긴 당직이 끝났을 때의 고요한 잠과 달콤한 꿈.
편안하지 않아도 돌아가고 싶은 곳
세 연은 모두 같은 말로 시작합니다. “나는 다시 바다로 가야 한다.” 한 번 말하고도 마음이 가라앉지 않아 되풀이하는 것처럼 들립니다. 특히 ‘다시’라는 말이 눈에 남습니다. 아직 가보지 않은 곳을 꿈꾸는 사람의 목소리라기보다, 이미 알고 있는 곳으로 돌아가려는 사람의 목소리입니다.
그가 기억하는 바다가 늘 다정한 것은 아닙니다. 새벽은 잿빛이고, 바람은 날 선 칼에 비유됩니다. 배를 모는 손에는 키의 거친 움직임이 전해집니다. 바다로 돌아가면 편안할 것이라는 약속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돌아가고 싶다고 합니다. 우리에게도 그런 곳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걷느라 숨이 찼던 산길이나, 바람 때문에 오래 서 있기 어려웠던 바닷가가 오히려 오래 기억에 남기도 합니다. 조금 힘들었지만 그곳에서는 몸과 마음이 같은 자리에 있었던 듯한 순간입니다.
이 시에서도 바다를 향한 마음은 구체적인 감각을 따라 움직입니다. 눈앞의 흰 돛에서 바람 소리로, 물보라에서 갈매기 울음으로 옮겨갑니다. 영어 원문에서 ‘And’가 이어지는 대목을 읽으면, 한 장면이 끝나기도 전에 다음 장면이 밀려옵니다. 파도가 연달아 들어오듯 시의 호흡도 앞으로 나아갑니다.
긴 당직이 끝난 뒤
마지막 연에 이르면, 넓은 바다에 사람의 목소리가 섞입니다. 웃는 길동무가 들려주는 흥겨운 이야기입니다. 처음에는 배와 별이면 된다고 했던 사람이, 끝에서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바라게 됩니다.
먼 곳으로 떠나는 삶에도 함께 웃을 사람이 필요한 모양입니다. 시의 첫머리에서 외롭다고 느껴졌던 바다가 이 대목에서는 조금 덜 쓸쓸합니다. 바람은 여전히 매섭지만,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사이에 잠깐의 온기가 생깁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남는 것은 고요한 잠과 달콤한 꿈입니다. ‘긴 당직’은 배에서 맡은 일을 지키는 시간이지만, 시를 다 읽고 나면 한 사람이 견뎌온 긴 하루처럼도 들립니다. 삶의 긴 항해가 끝난 뒤의 쉼을 떠올릴 수도 있겠습니다. 다만 그 의미를 너무 빨리 정해버리지 않고, 지친 선원이 일을 마치고 잠드는 모습을 먼저 바라보고 싶습니다.
온종일 흔들리는 배 위에 있던 몸이 비로소 눕습니다. 조금 전까지 들리던 이야기도 잦아듭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이 시의 끝은 꽤 소박합니다. 마음껏 움직인 뒤에 편히 잠들 수 있는 것, 함께한 사람의 웃음이 꿈까지 따라오는 것입니다.
다시 바다로 가고 싶다는 말 속에는 여러 마음이 담겨 있을 듯합니다. 먼 곳을 보고 싶은 마음도, 익숙한 자리에서 잠시 벗어나고 싶은 마음도 있겠지요. 오늘은 그 가운데 하루를 온전히 보내고 잠들고 싶은 마음이 오래 남습니다. 바람과 파도를 따라온 시가 마지막에는 작은 잠자리 하나에 조용히 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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