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럿이 부르는 노래를 듣다가 문득 목이 메는 때가 있습니다. 가사가 특별히 슬픈 것도 아닌데, 함께 이어지는 목소리 때문에 마음 한구석이 움직입니다. 혼자 들을 때는 그냥 지나갔던 노래가 그날은 조금 다르게 들립니다.
오늘 읽을 시에도 그런 순간이 찾아옵니다. 사람들이 갑자기 노래하기 시작하고, 그 소리를 듣는 사람의 마음에 기쁨이 차오릅니다. 그런데 그 기쁨 곁에는 눈물도 있습니다. 지그프리드 서순의 「모두가 노래했다」는 열 행의 짧은 시입니다. 짧은 노래가 끝난 뒤에도 귀를 조금 더 기울이게 됩니다.
문득, 모두가 노래하기 시작했습니다
Everyone suddenly burst out singing;
모두가 갑자기 노래를 터뜨렸다.
시인은 누가 먼저 노래했는지, 무슨 노래였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저 노래가 터져 나왔다고 합니다. 오래 참았던 웃음이나 울음처럼, 목소리가 저절로 흘러나온 듯합니다.
이 첫 문장에는 준비할 시간이 없습니다. 읽는 우리도 어느새 노래가 시작된 자리에 서게 됩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사람들의 목소리는 새장에 갇혀 있다가 풀려난 새들의 날갯짓으로 바뀝니다.
서순은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고, 전쟁의 참혹함을 시에 남긴 영국 시인입니다. 이 작품에는 1919년 4월이라는 날짜가 붙어 있습니다. 전쟁이 끝난 뒤의 시라는 사실을 알고 읽으면, 기쁨 사이로 스치는 공포라는 말이 조금 무겁게 들립니다. 그렇다고 시 속 장면을 특정한 종전 축하 행사로 정해둘 필요는 없겠습니다. 시는 장소도, 노래하는 사람들의 이름도 말하지 않습니다.
원문 만나기
Everyone Sang
Siegfried Sassoon (1886–1967)
Everyone suddenly burst out singing;
And I was filled with such delight
As prisoned birds must find in freedom
Winging wildly across the white
Orchards and dark green fields; on; on; and out of sight.
Everyone's voice was suddenly lifted,
And beauty came like the setting sun.
My heart was shaken with tears and horror
Drifted away ... O but every one
Was a bird; and the song was wordless; the singing will never be done.
※ ‘prisoned’는 ‘imprisoned’와 같은 뜻의 시적 표현으로, ‘갇힌’이라는 뜻입니다. 원문의 표기를 그대로 두었습니다.
우리말로 읽기
모두가 노래했다
모두가 갑자기 노래를 터뜨렸다.
내 안에는 기쁨이 가득 찼다,
갇혀 있던 새들이 자유를 얻어 느낄 법한 기쁨이,
흰 꽃 핀 과수원과 짙푸른 들판을 가로질러
힘껏 날아, 더 멀리, 더 멀리, 마침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모두의 목소리가 갑자기 높이 솟았고,
아름다움은 저무는 해처럼 찾아왔다.
내 마음은 눈물로 흔들렸고, 공포는
멀리 흘러갔다… 아, 모두가
한 마리 새였다. 노래에는 말이 없었고, 노래 부르기는 영영 끝나지 않으리라.
새들은 시야 밖으로 날아갑니다
첫 연에서 마음에 남는 것은 새들이 날아가는 거리입니다. 새장을 나왔다고만 하지 않고, 과수원과 들판을 지나 눈에 보이지 않을 때까지 날아갑니다. 지켜보는 사람의 눈길도 그 뒤를 따라갑니다.
‘on; on;’이라는 짧은 반복 앞에서는 읽는 호흡도 두 번 앞으로 나아갑니다. 어디까지 갈지 정하지 않은 움직임입니다. 새장 안에서는 날개를 펼칠 자리부터 살펴야 했을 텐데, 이제는 시야가 닿지 않는 곳까지 길이 열려 있습니다.
시의 ‘white orchards’는 말 그대로 옮기면 ‘하얀 과수원’입니다. 여기서는 흰 꽃으로 환해진 과수원의 모습으로 읽어 ‘흰 꽃 핀 과수원’이라 옮겼습니다. 그 밝은 풍경 다음에 짙푸른 들판이 이어집니다. 노래를 듣던 자리에 갑자기 넓은 바깥세상이 들어온 것 같습니다.
우리가 어떤 노래를 들으며 가슴이 트인다고 말할 때에도 이런 느낌이 조금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방 안에 그대로 앉아 있는데 마음은 이미 먼 곳을 향해 움직입니다. 닫혀 있던 문이 어디선가 열린 듯합니다.
기쁜데도 눈물이 나는 이유
둘째 연의 아름다움은 저무는 해처럼 찾아옵니다. 활짝 열린 아침을 떠올릴 수도 있었을 텐데, 시인은 하루가 기우는 때의 빛을 택했습니다. 그 빛에는 환함과 함께, 지나온 시간을 잠시 돌아보게 하는 고요함도 느껴집니다.
그 아래에서 마음은 눈물로 흔들리고, 공포는 멀어집니다. 원문의 행을 따라 읽다 보면 ‘horror’라는 말이 행 끝에 잠깐 남아 있습니다. 다음 행에 가서야 그것이 흘러갔다는 말을 만납니다. 짧은 멈춤이지만, 공포가 사라지는 순간을 조금 늦게 받아들이게 됩니다.
오래 마음을 졸이다가 일이 지나간 뒤에야 눈물이 나는 때가 있습니다. 견디는 동안에는 울 겨를조차 없었는지도 모릅니다. 이 시의 기쁨도 그런 눈물과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아 보입니다. 전쟁을 겪은 시인의 목소리라는 사실은 그 짧은 장면에 더 긴 침묵을 남깁니다.
그래서 이 노래를 마냥 밝게만 읽기는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기쁨이 작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두려움을 알았던 사람이 잠시나마 그 무게에서 풀려나는 순간이기에, 목소리가 솟아오르는 장면이 더욱 소중하게 다가옵니다.
모두가 한 마리 새가 되는 순간
처음에는 노래를 듣는 ‘나’가 새의 기쁨을 상상했습니다. 마지막에 이르면 ‘모두’가 한 마리 새가 됩니다. 한 사람의 마음속에서 시작한 비유가 노래하는 사람들 전체로 번져갑니다.
여럿의 목소리가 어울리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이 사라지는 느낌은 아닙니다. 원문은 ‘every one’이라고 적습니다. 함께 있는 이들 저마다가 날개를 얻는 모습을 떠올려봅니다. 같은 노래를 부르더라도 마음속에서 풀려나는 것은 사람마다 다를 테니까요.
끝에 가서 노래에는 말이 없었다고 합니다. 무엇을 노래했는지 알려주지 않았던 첫 문장이 여기에서 다시 생각납니다. 이 순간에는 가사의 뜻을 알아듣는 것보다, 곁에 있는 사람의 목소리를 듣는 일이 더 가까이 다가옵니다. 설명하기 전에 전해지는 마음이 있습니다.
‘노래 부르기는 영영 끝나지 않으리라’는 마지막 말도 그렇게 읽고 싶습니다. 실제 목소리는 언젠가 잦아들겠지만, 함께 노래하던 순간은 쉽게 끝나지 않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도, 다음 날 평범한 일을 하는 동안에도 문득 되살아날 수 있습니다.
시를 덮고 나면 어떤 노래였는지는 여전히 알 수 없습니다. 대신 흰 과수원을 지나 멀어지는 새들의 모습이 남습니다. 조금 전까지 갇혀 있던 새들이 이제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 빈 하늘을 한동안 바라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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