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에는 정말 음악이 숨어 있을까요? ― 리듬, 운율, 라임 이야기
먼저 아주 간단한 실험을 해보지요.
다음 말을 소리 내어 읽어보세요.
똑똑.
누구세요?
다시 한번.
똑똑.
누구세요?
이상하지요.
우리는 누가 박자를 알려주지 않았는데도 거의 비슷한 방식으로 읽습니다.
이번에는 이것을 읽어보겠습니다.
나는 오늘 아침에 일어나서 물을 마시고 창문을 열었다.
뜻은 분명하지만 특별한 박자를 느끼기는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첫 번째와 두 번째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오늘은 바로 그 ‘소리’를 찾아보려고 합니다.
시는 눈으로 읽는 글이지만, 아주 오래전부터 귀로 듣는 글이기도 했습니다.
시에는 박자가 있습니다
음악을 들을 때 우리는 자연스럽게 박자를 느낍니다.
하나, 둘.
하나, 둘.
혹은,
하나, 둘, 셋.
하나, 둘, 셋.
시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납니다.
어떤 음절은 강하게 들리고 어떤 음절은 약하게 들립니다.
그 강약이 반복되면서 rhythm, 즉 리듬이 만들어집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어려운 이론이 아닙니다.
먼저 귀로 느껴보는 것이지요.
이름만 불러도 리듬이 생깁니다
우리가 얼마 전에 읽었던 에드거 앨런 포의 시를 다시 떠올려볼까요.
Annabel Lee.
소리 내어 읽어보면 이름 자체에 묘한 리듬이 있습니다.
Annabel Lee.
그리고 포는 시 속에서 이 이름을 계속 반복합니다.
또 하나의 표현도 반복하지요.
In a kingdom by the sea.
애너벨 리.
바닷가 왕국.
애너벨 리.
바닷가 왕국.
시를 다 읽고 나서도 이 두 소리가 귀에 남습니다.
이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포는 의미만 전달한 것이 아니라 독자의 귀에도 기억을 남겨놓았습니다.
반복은 왜 힘이 셀까요?
한번 이렇게 말해보세요.
나는 너를 기다렸다.
충분히 의미가 전달됩니다.
이번에는,
나는 기다렸다.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어떤가요?
새로운 정보는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 문장에서는 기다림이 조금 더 길게 느껴집니다.
왜 그럴까요?
말 자체가 반복되는 동안 독자도 함께 시간을 보내기 때문입니다.
시는 이런 반복을 아주 잘 이용합니다.
단어를 반복하기도 하고,
소리를 반복하기도 하고,
문장의 구조를 반복하기도 하지요.
이것을 넓게 repetition, 반복이라고 부릅니다.
Rhyme은 무엇일까요?
영어 시를 읽다 보면 줄 끝에서 비슷한 소리가 반복될 때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sea
me
Lee
소리 내어볼까요.
씨.
미.
리.
끝소리가 비슷합니다.
이런 소리의 대응을 rhyme, 즉 각운이라고 합니다.
「Annabel Lee」에서는 이 비슷한 소리가 여러 번 되돌아옵니다.
그래서 시 전체가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노래처럼 들리지요.
여기서 재미있는 점이 하나 있습니다.
우리가 한국어 번역만 읽으면 뜻은 알 수 있지만 이 소리는 상당 부분 사라집니다.
바다.
나.
애너벨 리.
의미는 옮겨졌지만 영어의 sea / me / Lee가 만들어내는 소리의 연결까지 그대로 옮기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시는 번역으로 읽은 뒤 원문을 한번 소리 내어 읽어볼 만합니다.
그렇다면 Meter는 무엇일까요?
여기서 조금 어려워 보이는 단어 하나만 만나보겠습니다.
meter.
우리말로는 보통 운율의 규칙적인 박자 또는 율격이라고 설명합니다.
겁먹을 필요는 없습니다.
걷는 것을 생각하면 조금 쉬워집니다.
왼발, 오른발.
왼발, 오른발.
일정한 패턴이 반복되지요.
영어 시에서도 강한 음절과 약한 음절이 일정한 방식으로 반복될 수 있습니다.
가장 유명한 패턴 가운데 하나가 iamb, 약강격입니다.
쉽게 소리로 표현하면,
다-DUM
다-DUM
다-DUM
같은 느낌입니다.
그리고 이런 작은 리듬 단위를 foot이라고 합니다.
갑자기 발이 등장했네요.
왜 하필 발일까요?
시는 앞으로 나아가고, 리듬은 마치 발걸음처럼 반복된다고 생각하면 조금 기억하기 쉽습니다.
시에도 발이 있습니다
이 말을 처음 들으면 조금 재미있습니다.
시에는 행이 있고,
연이 있고,
이제는 발까지 있습니다.
시가 곧 걸어갈 것 같지요.
하지만 영어 시의 전통적인 운율을 공부하다 보면 foot이라는 말을 정말 자주 만나게 됩니다.
예를 들어 iamb가 다섯 번 반복되면 iambic pentameter라고 합니다.
셰익스피어의 시와 희곡에서 아주 유명한 리듬이지요.
하지만 지금 이것을 외울 필요는 없습니다.
오늘 기억할 것은 하나뿐입니다.
영어 시에는 강한 소리와 약한 소리가 반복되면서 발걸음 같은 박자를 만들기도 한다.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모든 시가 규칙적인 박자를 가져야 할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현대시에는 일정한 meter나 rhyme을 사용하지 않는 작품도 아주 많습니다.
이런 시를 free verse, 자유시라고 부릅니다.
그렇다고 자유시에 리듬이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사람이 말을 하는 순간 이미 호흡이 있고,
문장의 길이가 있고,
반복이 있고,
멈춤이 있습니다.
그러니 규칙적인 박자가 없어도 시에는 여전히 소리가 존재합니다.
자유라는 말은 아무 소리도 없다는 뜻이라기보다, 정해진 박자에 반드시 맞출 필요가 없다는 뜻에 가깝습니다.
시는 왜 소리 내어 읽어야 할까요?
눈으로만 읽으면 뜻을 따라가기 쉽습니다.
하지만 귀로 들으면 다른 것들이 나타납니다.
반복되는 소리.
긴 문장과 짧은 문장.
갑자기 멈추는 곳.
빠르게 흘러가는 곳.
같은 자음이나 모음이 되풀이되는 곳.
그리고 우리가 1부에서 살펴봤던 행갈이도 귀로 느껴집니다.
그래서 시 한 편을 이해하기 어렵다면 의외로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한번 소리 내어 읽어보는 것.
뜻을 완벽하게 몰라도 괜찮습니다.
먼저 시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들어보는 것이지요.
번역으로는 잃어버리는 것이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영어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함께 읽는 이유와도 연결됩니다.
번역은 의미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하지만 번역만으로 원문의 모든 것을 가져올 수는 없습니다.
rhyme,
rhythm,
말의 길이,
같은 자음의 반복,
같은 모음의 반복.
이런 것들은 언어가 바뀌면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좋은 번역을 읽고도 원문으로 돌아가면 새롭게 들리는 것이 있습니다.
“아, 그래서 시인이 이 단어를 골랐구나.”
하는 순간이 생기는 것이지요.
Read Poetry 버튼이 필요한 이유
우리 블로그에 Read Poetry 기능을 만들기 시작한 것도 사실 이 때문입니다.
영어가 익숙하지 않은 독자에게
“원문을 소리 내어 읽어보세요.”
라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조금 어려울 수 있습니다.
어디에서 쉬어야 하는지,
어떤 단어를 강하게 읽어야 하는지,
시의 호흡이 어떤지 알기 어렵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원문을 눈으로 따라가면서 조금 느린 영어 낭독을 함께 들으면,
시는 갑자기 글자에서 소리로 변합니다.
앞으로 이 기능이 조금씩 쌓이면 우리 블로그에서 꽤 중요한 부분이 될 수 있겠습니다.
아주 작은 귀 실험
다음에 영어 시를 만나면 처음부터 뜻을 찾지 말고 20초만 이렇게 해보세요.
첫째, 반복되는 단어가 있는지 찾아봅니다.
둘째, 줄 끝의 단어들을 소리 내어봅니다.
셋째, 비슷한 소리가 들리는지 들어봅니다.
넷째, 빠르게 읽히는 곳과 천천히 읽히는 곳을 느껴봅니다.
정답을 찾을 필요는 없습니다.
그냥 귀를 열어두면 됩니다.
오늘 배운 것은 네 가지입니다
rhythm — 리듬
시를 읽을 때 느껴지는 소리와 호흡의 흐름.
rhyme — 각운
비슷한 소리가 일정한 위치에서 되풀이되는 것.
meter — 율격
강약 등이 일정한 패턴으로 반복되는 규칙적인 박자.
repetition — 반복
단어나 소리, 문장 구조 등을 되풀이하는 것.
그런데 역시 용어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입니다.
시를 한번 귀로 들어보는 것.
오늘부터 시에서 이것 하나만 들어보세요
다음에 시 한 편을 읽을 때,
마음에 드는 두세 줄을 골라 천천히 소리 내어 읽어보세요.
뜻을 분석하기 전에 먼저 들어보는 겁니다.
어디에서 목소리가 빨라지는지.
어디에서 멈추는지.
어떤 소리가 다시 돌아오는지.
시는 종이 위에 조용히 놓여 있지만,
누군가 읽기 시작하는 순간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어쩌면 시를 읽는 두 번째 방법은 이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눈으로 뜻을 찾기 전에,
한번 귀로 시의 발걸음을 들어보는 것.
다음 3부에서는 소리에서 다시 그림으로 넘어갑니다.
「시인은 왜 그냥 말하면 될 것을 빗대어 말할까? ― 비유, 이미지, 상징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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